궁금증이 꼬리를 물면 꼭 확인해야 하는 습성때문에
오늘도 홀로 찾아 나설 곳이 있으니 이또한 오늘을
의미있게 보내는 일이라 생각되어진다.
이미 KBS에서 대하사극 태조왕건이 방영된지도
제법 오래 되었다. 여기에서 사극 초반부에는
고려 건국과정에서 후고구려, 그리구 태봉의
후삼국시대의 "궁예" 에 대해 기록된 문헌은
그리 없는 듯 하다. 왜냐하면 내 개인의 생각이지만
역사라는 것은 승자의 발자취를 남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 궁예는 신라말 지방호족들이 군웅할거 할때에
북원경의 양길휘하에 들어가 병권을 받아 주천(지금의
영월 주천, 울진, 명주(강릉)을 세력하에 두게 된다.
여기서 최초 병권을 받아 기거하던 곳이 북원의
남쪽 석남사라는 곳에서 기틀을 마련하게되는데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석남사는 지금의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속칭 절골
이라는 곳에 위치 하였다 하니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해서 찾아 나선것이 치악재(가르파재)를
넘어 신림면소재지를 지나 영월 주천방면으로 이동하다.
신림 IC를 지나가면 커다란 기도원이 우측에 있는데
여기서 조금 더 이동하다가 치악산 국립공원 방향으로
이동하게 되면 성남리가 나오고 성황림(천연기념물)을
지나 더 치악산 상원사가는 방향으로 계속가다보면
좌측에 황토방이라는 찜질방이 나오고 여기서 좌회전하여
황토방 뒤 시멘트 산길로 모퉁이를 돌면 커다란 계곡이
나오는데 여기가 석남사가 위치해 있던 절골이란다.
언젠가 원주문화 연구소에서 석남사지 유적탑비를 세워놓은
곳에 차를 주차시키고 왼편 편평한 밭길을 오르니 민가가
있고 민가 바로앞에 6-700여평의 다락논이 유일하게 있으니
아마도 거기가 서남사지인가 보다. 논두렁는 과거 절터에서나
볼수 있는 커다란 자연석 석축으로 논두렁이 되어있고 민가
추녀에도 커다란 자연석으로 보아 예사 자연석은 아닐 듯 싶다
농가 주인장이 계시는가 아무리 불러 보아도 외출하고 잡견들만
요란하게 집을 지키는라 짓어댄다. 그럼 주변은 다음기회에
답사하기로 해보자
< 석 남 사 유 적 지 비 >
< 여기가 석남사가 위치해 있던 폐사지 터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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