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모레가 경칩이고 보면 봄이 오기는 오는가 보다.
매년 그렇듯 꼭 연초만 되면 나의 직업상 매우 분주한 나날이 지나간다.
아직도 여유를 갖기에는 다음주 부터 분주한 또 한주를 보내야 된다.
하지만 이젠 제법 봄이 오늘 소리가 내귀에 들리는 것만 같아
모처럼 기지개를 펴고 가족과 함께 주변 가까이에 위치한
우리 옛님들을 찾아 나서 보았다.
몇번이고 시간이 허락되면 답사하는 곳이지만 오랜만에
원주시 문막읍 동화의료기 농공단지를 지나 지정면 안창리를 거쳐
경기 양평군 양동면을 지나 여주군 대신면 고달사지, 천처리 파사산성,
그리고 양평군 개군면 상자포리 마애여래입상과, 불곡리 미륵불을 찾아 나서본다.
우선 지정면 안창리 흥법사지는 마음만 먹으면 20여분 거리에
위치한 곳이라 안창대교를 거너며 그냥 지나치고 양동면을 거쳐 고달사지로 향해본다.
몇년전에 두어차례 답사를 한 곳이지만 당시에는 한창 발굴조사가 이루어 지던터라
잘 정돈된 사지전경을 볼 수 없었으나 오늘 찾은 고달사지는 잘 정돈되어 있었고
답사 동선을 따라 사지 주변이 훼손되지 않도록 데크도 설치되어있다.
살랑이는 봄 바람속에 어디선가 농촌의 향수가 그윽하게 풍기는 사지 동선을 따라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돌아본다.



<여주 대신면 상교리 고달사지 석조 : 경기 유형문화재 제247호>

< 여주 고달사지 석조대좌 : 보물 제 8호 >

< 고달사 원종대사 혜진탑비 귀부 및 이수 : 보물 제 6호>

< 고달사지 무명탑비 귀부 >

< 고달사지 승탑 : 국보 제 4호>

< 여주 상교리 고려 석실묘 : 경기도 기념물 제198호>

< 고달사 원종대사 혜진탑 >
고달사지를 답사하고 돌아서니 정오 30여분이 지나가고 있다. 예서 다시돌아
대신면소재지로 향하는 고개길을 넘어 상교리 불루헤런 골프장을 지나
대신면소재지를 지나 이포대교와 남한강 이포보가 위치한 천서리에 도착하여
주린배를 천서리 막국수로 채우고 포만감에 그냥 복귀하고 싶다.
하지만 오늘 답사지는 양평군 개군면 상자포리 파사산성 너머 마애여래입상 답사와
상자포리를 지나 불곡리 미륵불 답사가 오늘 답사지 인 만큼
남한강 이포보 맞은편에 위치한 파사산성을 올라 마래여래입상 찾아 본다.









경기도 양평군과 여주군의 경계인 파사산에는 신라시대 때 만든 파사성이 있다.
이 파사성 서북쪽 옆산의 정상 아래에는 거대한 암벽을 수직으로 깎아 5.5m 높이의 불상을 새겼다.
2개의 원으로 표현된 머리광배를 갖추고 있는 불상은, 엎어진 연꽃무늬가 새겨진 대좌(臺座) 위에 서 있다.
상당한 크기의 불상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신체의 균형이 잘 잡혀 있는 모습이다.
사각형의 얼굴에 눈·코·입이 큼직하게 표현되었고, 귀는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일반적인 부처의 복장과는 반대로 오른쪽 어깨를 감싸고 왼쪽어깨를 드러내고 있는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가슴 부분에서는 큰 곡선의 옷주름이 표현되었고,
왼팔에 걸쳐진 옷자락은 작은 곡선을 이루고 있다. 오른손은 팔꿈치가 각이 진 상태로
가슴 부분에 놓여 있으며, 왼손은 그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만큼 마멸이 심하다.
선으로 불상을 표현하는 방법은 고려시대에 유행한 것으로,
동화사 염불암마애여래입상이나 인접한 이천의 영월암마애여래좌상과 비슷한 표현을 보인다.
양평군(楊平郡)과 여주군(驪州郡)의 경계의 파사산(婆娑山) 정상의 능선을 따라
신라시대에 축성해 임란때에는 승군총섭(僧軍總攝) 의암(義巖)이 승군(僧軍)들을
동원해 수축한 파사성(婆娑城)(사적 제251호)이 있으며, 현재 발굴중이다.
이 파사성 정상 서북쪽 옆산(여주군(驪州郡)쪽)의 정상 바로밑에 인위적으로
거대한 암벽을 깎아 만든 큰 수직면에 마치 대형화면에 부처님이 나투신 듯 높이
5.5m의 큰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이 선각(線刻)되어 있다.
주변에는 경사가 급하고 숲이 우거져있고 기와편이 수습된적이 있다고 하므로
파사성(婆娑城)과 관련이 있는 사찰(寺刹)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은 규모가 대단히 큼에도 불구하고 전체 균형이
알맞아 주목되는데, 이중원륜(二重圓輪) 두광(頭光)을 갖추고서 어깨가 각이져
당당해 보이는 신체에 군의(裙衣)와 좌견편당형(左肩偏袒形) 법의(法衣)를 입고
복연형(覆蓮形) 연화대좌(蓮花臺座) 위에 서 있는 모습이다.
상호(相好)는 사각형 얼굴에 큰 이목구비(耳目口鼻)·어깨까지 늘어진 귀·낮은 소발형(素髮形)
육계(肉계)를 보이고 있으며, 우수(右手)는 팔꿈치가 각이진 채 가슴에 수인(手印)을
짓고 있고 좌수(左手)는 마모되어 식별키 어렵다. 법의(法衣)의 의접선(衣褶線)은
구획을 지은 듯한 수직선을 중심으로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신체를 감싼 자락은
큰 곡선을 그리고 있고 왼팔에 걸친 자락은 작은 곡선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주름진 군의(裙衣)가 표현되었다.
이러한 선각(線刻)표현은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조각수법으로서 동화사(桐華寺)
염불암마애여래좌상(念佛庵磨崖如來坐像)이나 인접한 이천(利川) 영월암(映月庵)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은 이중원광(二重圓光)을 갖춘 넙적한 사각형 얼굴·각이 진
팔꿈치·의접선(衣褶線)· 선각표현(線刻表現) 등에서 고려시대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고
영월암(映月庵) 상(像)과도 유사한 점이 많아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