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제4차 일본 온천 여행(3박 4일) : 2/15(토)~18(화)

그 동안 1~3차 큐슈 온천 여행을 다녀 왔으며, 제4차는 나가사키 코스를 가려고 했더니 모객이 안되서 행사가 확정된 코스로 변경합니다. 일본 온천 여행은 코스가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합니다. 가볍게 한 번 가 볼만 합니다. 일단은 2/3(월)까지 신청을 받아 보겠습니다. 

 

4일차 아침에 부산에 도착해서 부산 여행을 하시고 올라가실 분들은 오후 5시 경 교통편을 예약하시기 바랍니다. 광나루가 부산의 가 볼만한 여행지를 선별해 드리거나 원하시는 여행지를 안내하여 드리겠습니다.

일본 온천 여행 일정

일자

장소

교통편

시 간

일      정

식사

1일차

부산

 

 

 

 

부관훼리

 

 

17:30

19:00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집결 및 출국 수속

출국수속 및 승선(시모노세키 향발)
▷개인 휴식 및 선내 숙박

석 : 선내식

▷부관훼리 성희 또는 하마유(다인실)

2일차

시모노세키

 

 

 

 

 

 

 

아마구치

 

 

 

 

 

 

 

 

 

 

 

 

 

 

유모토

 

 

 

 

 

 

 

 

 

 

 

전용버스

 

 

 

 

 

 

 

 

 

 

 

 

 

 

 

 

 

 

 

 

 

 

 

 

 

 

 

 

 

 

 

 

 

 

08:00

 

 

 

 

 

 

 

 

 

 

 

 

 

 

 

 

 

 

 

 

 

 

 

 

 

 

 

 

 

 

 

 

 

 

▷하선 및 입국 수속

아카마신궁 : 1185년에 건립된 이곳은 헤이케 황제 안토쿠를 모셨던 신궁으로 빨간 색감의 건축물이 인상적이다. 조선통신사 사절단이 이곳에 머물며 객관으로 사용되었다.
조선통신사 상륙 기념비 :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도착 하는 장소중 가장 처음인곳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비
죠후성하마을 : 사무라이마을로 번성하였고 메이지유신 발발의 무대가 된 곳으로 오래된 신사와 사원이 많다.
코잔지 :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단풍의 명소로 유명한 절
도키와공원 관광(일본 도시공원 100선, 아름다운 일본의 걷고 싶은 길 500선에 선정된 아름다운 공원, 식물원/야외조각공원/턱탄박물관 관광)

루리코지 5층탑(국보) : 효류지, 다이고지와 함께 일본 3대 명탑 중에 하나로서 야마구치현의 대표 관광 명소

류쿠노시오후키 : 절벽아래 동굴에 압축되어 바닷물이 분출되는 모습이 마치 용이 하늘을 향해 떠오르는 모습과 닮아 있으며 절벽에서 바다까지 이어지는 123개의 붉은 토리가 인상적인 곳

유모토 온천마을 산책아시유(족욕) 메구리 체험) : 온천마을 유모토와 오토즈레강가의 풍경을 즐기며 온천마을답게 각 장소에 족욕장이 있어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온천마을 산책

유모토지역 대표 특급 전통온천 료칸호텔 사이쿄 도착 후 체크인

☞ 전관 화실(이본식 다다미방)

1. 일본문화 기모노(유가타) 입기 체험

2. 회석(가이세키) 요리로 석식

3. 노천 온천욕

4. 일본 전통 춤과 노래 감상(가부키쇼)

조 : 선내식

중 : 현지식

석:가이세키

▷ 유모토 특급 온천교칸호텔 사이쿄 또는 동급

3일차

유모토

미네

 

 

 

 

 

 

 

 

 

 

 

 

기타큐슈

 

 

 

 

 

 

 

 

 

 

 

 

 

 

 

 

시모노세키

 

 

 

전용버스

 

 

 

 

 

 

 

 

 

 

 

 

 

 

 

 

 

 

 

 

 

 

 

 

 

 

 

 

 

 

 

부관훼리

 

 

전일

 

 

 

 

 

 

 

 

 

 

 

 

 

 

 

 

 

 

 

 

 

 

 

 

 

 

 

 

 

 

19:00

21:00

 

 

기상 및 조식(호텔식)

타이네이지 : 1410년에 창건된 유명 사찰. 타이네이지 강에 놓인 반자쿠교는 에도시대 전기의 유물로 야마구치현의 3대 다리 중 한 곳이며, 벚꽃 명소로 유명하다.

아키요시다이 : 석회암 고원으로 석회암 덩어리가 꽃처럼 무리지어 있다. 일본 최대의 카르스트 지대로 국립공원으로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다.
아키요시동굴 : 동양최대의 석회암 종유동굴로 동굴 길이가 10Km에 이르고, 사계절 평균기온 17도로 시간이 멈춰버린 듯 불가사의하고 장엄한 대자연의 경관이 펼쳐진다.

▷점심 특식 - 화양식 뷔페 : 기타큐슈 특산의 유기농산물을 이용한 약 50여가지의 건강 뷔페식사

고쿠라성 : 역사적으로 큐슈의 관문 역할을 한 높이 18.8m의 돌 성벽 위에 솟은 상아색 천수각의 5층이 4층보다 규모가 크고 처마가 없는 당나라 형식으로 지어진 기타큐슈를 대표하는 성(외관 관광)
하모니랜드 이동로 이동
리버워크 : 고쿠라성, 가쓰야마 공원 등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역사적 유적들을 끼고 있으며 문화/예술/정보 제공/상업 등 고도의 기능을 갖춘 대규모 복합 상업 문화시설

탄가 재래시장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미(美)향으로 과거에는 무역향으로 번성하였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오랜 역사적인 건물들과 현대의 건물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멋을 풍기는 모지의 관광명소

히노야마 전망대 : 해발 268m의 히노야마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이며 전망대에서는 칸몬해협 및 칸몬대교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시모노세키항으로 이동
▷시모노세키 항 도착

출국 수속 및 승선(부산 향발)
개인 휴식 및 선내 숙박

조 : 호텔식

중 : 특   식

석:자유매식

▷부관훼리 성희 또는 하마유(다인실)

4일차

부산

 

부관훼리

 

08:40

 

선내 조식 후 하선

입국 수속 후 개별해산

조:자유매식

 

참가비 : 330,000원(부산 출발 - 유류할증료/기사, 가이드 팁/양국 항만세/여행자보험/2일차 석식/선내 2식 포함 / 불포함(선내 2식, 광나루 인솔비 2만원)

집결지 및 일시 : 2/15(토) 17:30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본 여행에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은 게시판에서 답사 신청을 하시고 예약금(10만원)을 아래의 구좌로 입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예약금 입금을 정식 신청으로 간주합니다.

 

참가비 입금 계좌 : 국민은행 045537-04-002401 : 예금주 - (주)세계문화투어
나홀로 테마 여행
운영자 : 광나루(010-5039-0243), 사무실(02-557-0243)
                                    메일(kryi2@hanmail.net), 팩스 : 02-6280-5018

 

※ 서울 출발 교통편(KTX 예약은 출발 1개월 전부터 가능)

※ 귀경 교통편
- 바로 귀경하실 경우에는 오전 10시 이후 KTX를 예약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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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문턱에 들며 어찌 바쁜 하루가 지나간지 모르겠다. 이곳저곳 초교동창 고교동창 군대동기 할것 없이

윤달이 있던 한해라 그런지 봄에 혼사는 별로 다닌 기억이 없는데 10월에 접어들면서 매주 토, 일요일

3 ~ 4건은 경조사가 있었던 달이기도 하다.

 

물론 11월도 마찬기지이다. 월초부터 일곱명이 군대 동기 모임(일명 : 칠성회)을 하는 동기생의 여식이

처음으로 혼사가 있어 아빠들이 결혼축가를 부르기로 약속하여 축복송을 부르니 참으로 여러 친지들의 부러움을

한몸으로 받은지도 10일 지났다. 그렇게해서 금요일 오후 늦게 서울로 이동하여 동기생들만나 축복송 예행연습하고

결혼식 참석하고 우리 아이들( 혜원 /영배) 집에서 이틀을 숙박하고 일요일 오후에 원주에 도착하여 월동준비로

김장전에 담그는 총각김치를 밤 늦게까지 아이 엄마와 함께 담갔다.

 

불과 수년전만 하더라도 나는 월동준비로 김장 담들때 어떻게 준비하여 담그는 지도 몰랐다. 의례 김장 담글때면

기회가 왔다 싶어 산으로 유적지로 나홀로 여행과 산행을 떠나기 일 수였다. 하지만 아이엄마도 "하늘의 뜻을 안다"는

50대의 "知天命" 나이가 들면서 하는 일들을 힘들어 하면서 부터 아이엄마 가사도우미가 되어 내가 실제로

그 역할을 하다보니 남자들이 일하기에도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여서인지 이제 몇 년전 부터는 월동준비의 김장담그기는 나의 일이 되어버렸다. 올해에도 마찬가지다.

지난 11월 4일(일요일) 결혼식에 참석후 오후늦게 집으로 와서 "총각무 다듬고 씻고 절이기, 쪽파 담듬고 씻기, 마늘까지등

모든 준비를 마치고 양념과 간 맞추기만 가족이 하여 "총각김치"를 늦게까지 담구어 월동준비를 마쳤다.

 

또 지난주 11월 10일(토요일)은 작은처남 장남 결혼식이 있어 처가의 여러형제들과 함께 결혼식에 참석하고 오후늦게

큰 누님이 손수 농사지어 보내주신 배추를 다듬고, 썰어 절이고, 무우와 쪽파를 다듬고, 돌산갓도 다듬고 씻고 나서

깨끗이 씻은 무우는 채썰고,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시장에서 생새우와 굴, 그리고 양념을 구매하다 놓고

토요일 절였던 배추를 깨끗이 씻고 양념 버무리고 앞치마 두르고 절인배추 속넣기까지 끝내니 늦은 오후가 다 되도록

김장을 담구었다. 실로 김장의 90%이상은 가족의 도움을 받아 내가 한셈이다.

 

조금은 귀찮고 힘들지만 가족이 늘 겨울걱정하는 월동준비 김장을 담궈 놓고나니 세상이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듯

뿌듯하다. ~~~ 늘 힘든일을 하여서인지 아이 엄마가 요즈음은 오른 어깨가 아파 고통스러워 하곤한다. 이럴때

내가 월동준비를 거뜬히 해결하였으니 얼마나 마음이 편안하랴~~~

아뭏든 이제 아이들도 둥지를 떠나 가족과 단둘이 보낸지도 10여년이 되어간다. 웬지 그동안 아이들을 위하여 희생한

가족이 늘 고맙기만 하다. 언제나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그렇게 지냈으면~~~~

 벌써 7년전으로 기억되어진다. 처음 산행에 취미를 붙이고

경기 포천 운악산 산행기가 문득 내눈에 들어와 가져다 놓았다.

 

산오름 9월 정기산행 일정이 공지되고 정기산행 신청 횐님이

정원을 초과하여 정산 1주일 전에 일찌감치 마감되었으니, 이후

신청하신 횐님들은 운영위원님들이 버스통로에 신문지를 깔고

자리를 내어 한분이라도 더 함께 하겠단다.

 

이전에 카페글을 통해 월출산, 사량도지리망산 정산때 보다도 더 많은

꼬리글이 넘쳐 났단다.  이는 9월 운악산 정기산행을 사흘 앞둔

지난 목요일까지만 해도 그랬단다. 그러나 정산때가 되면(8월정산때

그랬음) 걸림돌이 되어버린 일기예보의 기상전망은 과연

산오름 정기산행 편인가?  아님 산행의지가 나약한 횐님들 손을 들어줄까?

 

암튼 저멀리 일본 오끼나와 남쪽해상의 태풍"신산"은 정기산행을 함께

하겠다는 울 횐님들의 마음을 나약하게하여 일부 신청횐님들이 다음산행으로

미룬 가운데 9월 정기산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태풍 이동경로가 빨라도 월요일쯤 남해상에서 동해상으로 비껴간다는

뉴스 보도를 카페글에 실은 초석 등반대장님, 산행여부를 묻는 횐님에게

꼬리글로 우천시도 산행한다는 정기산행의 결연한 의지를 알리는

느림보 회장님, 글구 운영위원님들의 굳건한 믿음에 힘을 얻은 나는

무조건 앞으로 돌진한다.(9월 정산에 함께한 횐님들 모두가 코뿔소 같은

돌진형인가요? ㅎㅎㅎ)

 

산행때마다 항상 느끼는 맘이지만 꼭 초등생 소풍가는 마음으로 일욜

05:30분에 맞춰놓은 핸펀 알람이 요란한 음악소리로 아침을 깨운다.

잠자리를 뒤척이다 일어나, 가족을 보채며 산행도시락과 행동식으로

배낭을 꾸리고, 여벌옷, 방수자켓, 우의 , 지갑 , 핸펀, 카메라가 행여

비에 젖을세라 랩봉지에 꼬옥싸고 집을 나서니 06:45분이다.

태풍이 몰아 칠것이라는 기상예보와는 달리 높고 낮은 구름이 뒤섞인

초가을 이른아침의 산들바람은 더없이 산행하기에 적절한 날씨인 듯 하다.

 

아파트 주차장의 나의 애마 "은포돌이"(은색스포티지를 그렇게 부름)가

" 어서오세요 주인장 오늘은 어디로 모시나이까? " 라고 반기는 듯 하다

뒷자석에 배낭을 싣고 치악예술관 주차장 모임장소로 이동하니 이미

오늘 운행할 버스며, 느림보회장님, 초석등반대장님 , 김지원총무님,

크루져님등이 반갑게 맞이하고 닉네임을 모르는 횐님들도 여러명

차량에 탑승하고 있었다.

 

혹시나 한사람의 횐님들이라도 더 동참시킬세라 예정된 시간이 지난

07:15분이 다 되어서 탑승하신 물망초님(내 옆자리에 동승하심)을

마지막으로 산오름 일행을 태운 버스는 치악예술관을 출발 오늘의

정기산행지인 운악산으로 향해 달려 갑니다.

이윽고 버스는 홍천강 휴게소에서 20분간 휴식하고 중앙고속도로를

내달려  춘천IC를 나와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의암댐 하류를 지나

경춘국도로 접어들고, 이내 가평을 지나 청평에 도달하기전에 가평현리

37번 국도로 접어든다.

 

경춘국도 하면 북한강 계곡의 수려함으로 옛부터 강촌, 가평 남이섬

청평 유원지등 경춘국도 주변 모두가 유원지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지난 장마로 인한 페해는 아직도 남아있으니, 소양강에서 내린 강물이

의암댐을 거쳐 북한강으로 유입된 강물이 온통 시뻘건 황톳물이니

저렇게 탁한 물속에서 생물체가 살수 있을런지 의구심이 간다 ?

(북한강 강줄기의 천혜의 경관인 푸른강물은 온데간데 없었음)

 

37번 국도인 현리길에 접어 들어서야 맑은 시냇물 구경을 할수 있었고

우리 일행은 현리를 지나 일동으로 이르는 서파검문소에서 우회전

오늘의  산행시작지인 운주사 입구에서 하차하여 산행에 오른다

 

09: 47분경 산행을 시작 능선산행로를 택한 우리는 초석등반대장님을

선두로 시작하여 마지막 후미까지 제법 초 입새부터 경사길이긴 하지만

모두들 갈고 닦은 산행 노하우를 맘껏 실천에 옮기는 듯 오릅니다.

능선과 계곡산행로를 지나면서 암릉지역에 사다리 경사로 2곳을 지나

암릉 자일타기는 이번 정산의 절정이 아닌가 생각되어 집니다.

 

살포시 미소지며 오르는 횐님들이 모습에서 행복한 모습을 느낄수

있었구여, 애기봉 직전에서의 후리지아님이 내어 놓으신 행동식

포도송이의 달콤한 그맛은 정산의 참맛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여기에서 저멀리 포천 일동의 황금들녁을 내려다보며, 멀리 솟아오른

암벽을 배경삼아 한 컷 담아 봅니다.

 

자 그럼 애기봉을 돌아 계속 정상을 향해 계속 올라야 겠지요

애기봉까지의 암릉타기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올랐다면 애기봉

부터는 전형적인 육산으로 다소 경사진 곳이지만 배부론산길 정도

되는듯한 곳을 지나 운악산 정상에 도착하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경기 5대악산 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정상 운악산 푯말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여기에서도  산오름이 다녀 갔노라의 등정표시로 횐님들 단체사진

한 컷하고, 꿀맛 보다 저 진한 점심을 예서 도란도란 모여서 들자,

후리지아님의 노오랗고 빠알간 파프리카, 닉네임은 모르지만 친구님의

도토리묵, 글구 입속에 향기 가득한 산채나물은 그 맛을 잊을 수 없을

것 같구, 행복한 아침님의 치악산 약주, 공주님의 복분자주 한잔은  술이

아니라 보약인 듯 착각 할뻔 했구요 ㅎㅎㅎ

 

정상에서 가평 현등사 방향으로 하산길은 그야말로 산악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하산하는 길이 었구여, 설악을 옮겨놓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병풍바위며 여러암릉이 인상에 남는것 같아요

그럼 여기서도 그냥 칠수 있을까요 한컷 해야져

 

13:00시에 선두를 따라 쉬엄쉬엄 주차장까지 내려오니 15:00시가

조금 지났군요. 모든 님들 안산하시고 주차장에 도란 도란 모여앉아서

막걸리, 맥주, 소주한잔 나누는 정겨움이 어쩌면 산행의 마지막 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잔 두잔 정겨움을 나누다 보니 곤드레는 쬐금

취기가 더해 지네요 ㅎㅎㅎ

 

이후 취기에 주차장에서 출발시간, 현리를 지나 오던길의 역순으로

춘천휴게소에서의 맛갈나는 비빔밥으로 저녁식사시간 이후 행적에 관한

시간은 기억나시는 횐님들이 남겨 주세요

마지막으로 치악예술관 주차장에 복귀한 시간이 19:00이 채 안되었던

것 같은데 시간을 놓쳐 버려서요

 

다만 한가지 산오름에서 느낀것은 울 횐님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한 가족 같다는 저의 느낌은 느낌그대로입니다.

자 그럼 담 정기산행에서 또 뵈어요 ^^ 행복한 하루 하루 되세요

곤드레 산행후기 끄읕 ~~~~~~~~~~~~~~~~~~~~~~~~~~~~~

 

* 산행 자료사진 *

   (USB에 꼭 저장해 놓았던 자료 다시 꺼내 올려 봅니다 ㅎㅎ)


< 여기 암릉 오르는 횐님은 누구신가요 ? >


< 애기봉에서 바라폰 포천 일동 황금들녁 >


< 암벽 사이로 힘찬기상으로 솟구친 적송>


< 여기가 설악인가요? 운악인가요? >


 < 암반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 같네요 (줌으로 당겨봄) >


< 운악산 병풍바위 (등반대장님이 산행공지에 올린 그 바위네요) >

요즈음 같은 정보화 시대에 현금을 가지고 다니며 사용하는 것은 소액을 사용할때 외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신용카드를 사용하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에 자동차 연료주입부터 세세한 문구, 서점에서 도서구입에 이르기까지 거의 신용카드를 결재하고 또 그렇게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은행통장은

거의 열람하여 무엇이 얼마나 입금되고 빠져 나갔는지도 몇개월이고 모르는 때가 많다.

 

다행이도 내가 주로사용하는 신용카드는 카드결재와 동시에 SMS문자로 통보해 주니 사용내역을 확인 할 뿐이다.  이렇게 신용카드와 은행계좌로 CMS결재로

각종 전화요금이며 정보통신요금이며 빠져나가다 보니 통신요금이 얼마 빠져나가는지도 모른다. ~~~ 대략  나와 나의가족 핸드폰, 그리고 수년전 장모님께

준비하여 드린 장모님 핸드폰 사용료, 우리 큰 딸과 아들녀석 핸드폰 요금,  큰딸 인터넷 및 케이블 방송 통신료, 나의 직장거주지 인터넷,케이불방송 통신료,

그리고  우리가족의 보금자리 전화료와 인터넷, 케이블방송 통신료 등  정보통신료로 지출되는 월단위 사용료만도 꽤나 된다.

 

이러한 통신료가 빠져나가는 주통장외에  과거 하나로 통신 인터넷에 가입하였다가  SK브로드 밴드로 통합된 인터넷 통신요금은 별도의 통장에서 빠져나가기에

더욱 확인하지 못하고 거의 1년이 지나 어제 통장을 정리하여 보니 그동안 SK브로드 밴드 인터넷 통신요금으로 빠져나근 금액이 지난해 10월까지는 월 정액

25,875원씩 빠져 나가던 것이 11월에는 슬그머니 32,409원이 결재되어 빠져나갔고, 지난 12월에도 32,343원이 결재되었다.

 

본인도 모르게 약 7천여원의 통신사용료가 떠 빠져나간 것이다.  요금이 많고 적고간에 본인에게 아무런 통보도 없이( 쓸데없는 문자는 자주 발송하며, 통신료

더 빠져나가는 것은 어떤 연락 멧세지도 없이) 결재해 갔다는 것에 화가 치민다.  하여서 통신사 상담원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하니  3년간 약정했던 것이 끝나

할인없이 결재하였단다.  허참~~~

 

SK브로드 밴드(전 하나로 통신 하나포스) 인터넷은 내가 지금의 보금자리로 옮길때 신청하여  10년 이상 사용하던 인터넷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 않던가?  10년동안 오로지 한 인터넷 통신사만 애용하며  이곳 저곳 그리고 나의 고향 선배님 또는 후배들을 통해 타 인터넷로 바꾸면 파격적인 할인 행사도

있다고  바꾸라 하여도 오로지 최초 가입한 회사에 대한 애착과  이곳 저곳으로 옮기지 않겠다는 그 어떤 말할 수 없는 "의리" 이러한 것으로 버티었는데~~

어떤 서운함이 먼저 앞선다.~~ 

 

( "A"통신사의  인터넷망을  2곳에서 사용하지만 3년이 지나니 오히려 금액이 다운되고  더 할인 하여 줄수 있으니 장기 약정하라고 수차례 안내원으로 부터

연락이 오고  문자 보내고 하던데,  오히려 반대로  SK 브로드밴드는 3년이 지나기 무섭게 슬그머니 요금을  올려 받는 심보란 무엇인가?  수년전에도

슬그머니 요금 인상하여 인출한 것을  수개월이 지나고 통장정리하다 인지하여  연락하니 그제야  할인 해 주더니  아주 상습적이란  인상이 깊다.)

 

이제 한회사 상품으로만 10년사용 하였으니 이제는 바꾸보아야 할때도 된 듯 하다.  그렇지 않아도 일반전화와  케이블방송, 인터넷회사가 서로 달라  한 통신사

로 통합하여 사용하고 싶은 맘이 있었으니 미련없이 바꾸어야 겠다~~~ 해서  그동안 지킨 의리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떨쳐버리고 패키지로 하나의 통신사

상품으로 신청을 하였다.

 

어제 새로운 패키지로 통합하는 것으로  "A"회사 상품으로 가입신청을 하고, 오늘은  10년이상 사용하였던 "SK 브로드 밴드" 인터넷 가입을 해지하였다.

웬지 허전한 마음과 서운한 마음, 그리고 한결같이 애용한 회사로 부터 배신감 같은 형용 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가슴에 와 닿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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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서  어미를 잃어버리고 어린아아 젖병에 넣어준 우유로 자라난 고라니 새끼  강쥐보다도 더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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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행일시 : 2011년 11월 6일(일)                                                                                                                                   

 2. 산 행 지  : 월출산(809m) : 전남 영암군 / 강진군 일대                                                                                                      

   3. 산행후기 :                                                                                                                                                                   

    이번 월출산 산행은 3번째로 기억되어진다.  언제나 찾아도 괴암괴석들이 아름답게 이어진 산  호남의 금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다  월출산 일대에는 우리의 문화유적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  사자사지 석등대좌와 목탑지,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144호),

    용암사지 삼층석탑(보물 제 1283호), 용암사지 탑봉 삼층석탑, 용암사지와 용암사지 부도, 그리고 월곡리 마애여래좌상, 칠치계곡      

    마애불,  금릉경포대 삼존골 마애삼존불 , 무위사 경내 불교문화유적,  도갑사 경내 불교문화유적,  강진 월남사지 등  참으로 산과     

    유적답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생각되어지는 곳이다.                                                                                                      

 

     따라서  만추에 월출산  산행은 우리의 아름다운 산하와 유적을 답사하고 싶은 마음에 우리지역의 여러 산악회 카페를 뒤적이다          

    함께한 산행이었다. 비록 날씨가 고르지 못해 천황봉 정상에서 영암의 전경들은 감상하지 못하였으나 산행과 아울러 여러 문화재를    

    답사한 나에게는 매우 뜻 깊고  기억에 남는 산행이었다.                                                                                                        

                                                                                                     

4. 산행 답사자료 담기                                                                                                                                                    

 

 

 

 

 

 

 

< 안개속으로 희미하게 멀리 월출산의 명물 구름다리가 아련하게 보이네요~~~ 날시만 좋았다면 아주 멋지게 보였을텐데~~>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제 144호) : 구정봉에서 0.5km 능선과 급경사길을 내려가면 용암사지 바로위에 위치해 있어요>

< 월출산 용암사지 삼층석탑(보물제1283호) 용암사지에서 동편언덕에 우뚝솟아 있어요>

< 월출산 용암사지 서 삼층석탑(비지정):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에서 서편 능선방향으로 150미터 더 이동하면 있어요>

< 월출산 용암사지 :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머위밭으로 변한 폐사지를 만날 수 있어요. 용암사지에는

내려가는 입구에 석조를 비롯하여 자연샘과 주춧돌이 잘 간직되어 있는 300여평의 폐사지 입니다.>                       

<용암사지 부도(승탑: 비지정 문화재) : 월출산 용암사지에서 출입금지 푯말이 있는 축대아래  빼곡한 산죽터널을 빠져나가

50여 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왼편에 오누이처럼 부도(승탑) 2기가 외롭지 않게 숲속에 위치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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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송  "시바의 여왕" 이란 곡이 있다.  오늘 문득   솔론몬과  시바의 여왕 이야기가 생각나 여기저기 뒤적이다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놓은 글이 있어 옮겨서 적어 보았다. 

 

 샹송 "시바의 여왕" : 프랑스에서 활약 하였던 북아프리카 출신의 남성가수 미셀 로랑이

1967년에 작사. 작곡하여 레코딩 (사랑하는 연인을 시바의 여왕에 비유하여 노래한 곡이며,

샹송의 대표적인 명곡이다. )

 


"시바의 여왕"  샹송  제목은 작곡 작사자가 옛 연인을 생각하며 곡을 만들었다고 하니 우선 먼저 떠오른 것은

기원전 1000여년 이전으로 돌아가 "시바의 여왕"과 "솔로몬 왕"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솔로몬 왕"하면 지혜의 왕으로 "시바의 여왕"이 저멀리  만리길의 사막을 거쳐 "솔로몬 왕"의 지혜를 시험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는 당시의 이동거리로 볼때 죽도록 좋아하지 않으면 "시바의 여왕" 이 "솔로몬 왕"을 찾아

왔겠는가? 하는 생각이 나에게는 든다.

 

따라서 "시방의 여왕" 하면 우선 "솔로몬 왕" 의 이야기 부터 풀어 나가야 할 것 같아  여러 검색창을  찾아 보았다

"솔로몬 왕" 은 기원전 약 965 년부터 926 년까지( 혹은 912 년이라고 함. ) 약 35 년 정도를 이스라엘의 2 대 임금

 " 다윗 왕 " 에 대를 이어서 통치 한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성경에도 나오듯이 " 다윗왕 : King David "
( 기원전 994 년에 사울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에 왕이 됨) 이 자기 휘하의 장군이던 " 우리아 " 의 아내 " 밧세바 "

를  빼앗는 우 ( 愚 ; 죄 )를 범해서 " 우리야 " 를   팔레스타인과의 최전선 전쟁터에 내보내 전사하게 하고
얻은  여인 " 밧세바 " 와 혼인해서"다윗 왕"과  " 밧세바 " 사이에서 " 솔로몬 왕 " 이 태어났다고 한다

지금 세상 같으면 이해가 정말 않 되지만  처첩을 수백명을 거느리고 있는 왕으로서  부하 장군의 아내를 탐을

냈으니까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들 중에 유명한 일화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서 " 다윗왕 " 은 "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 " 나단 : Nathan 선지자 " 를  통해 질책을 받고 " 다윗왕 " 이 침상이 젖도록  통곡 회개

기도를 하며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이 죄로 다윗 왕의 아들이 질병으로 죽는 일도 겪게 된다.

 

이에 다윗 왕은 겨우 백성들에게는 평정심을 되 찾은듯 했으나 나중에는 다윗왕 생전에 그의 장자인 " 암논 " 이
배다른 누이 동생을 욕 보이자  그녀의 친오빠인 " 압살롬 왕자 " 가 분함을  못 참고 " 암논 " 을 죽이고 자기 외할아버지
나라로 도망하는 집안의 갈등을 겪게 된다.

그로부터 몇년 후에는 정치적 야심으로  " 다윗왕 " 이 왕위에 있는데도 " 헤브론 " 에서 " 압살롬왕자 " 가 왕위에

오르고 모반을 일으킨다.  그리고  급기야는 " 다윗왕 " 과 전쟁을 하고 나중에는 전쟁에 지면서 몰려서 도망 했는데
다윗왕은  그래도 산채로 체포는 하되 " 요압장군 " 에게  죽이지는 말라고 지시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요압장군의

손에 " 압살롬 왕자 " 가 처형 되는 변고도 겪게 된다.

 

하여튼 누구보다도 험한 일생을 보낸  이스라엘의 왕  " 다윗 : David " 왕이 나이가들어  그의 천수가 다해서  임종의

시간이 다가 오자  " 왕비 밧세바 " 는 그 당시에  이스라엘의 제사장인 " 나단 (Nathan )선지자 " 에게 평소에 " 다윗왕 " 이 

" 솔로몬 " 으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해주겠다고 했다며 강력히 주장하여 자기의 외아들인 " 솔로몬 " 을 왕으로  옹립해

달라고 강하게 주장하게 된다.  그러자 " 다윗왕 " 의 다른 아들인 " 아도니아 " 왕자가 죽기 살기로 반란을 일으키는 권력

다툼을 하게되   이 내란을 수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 아도니아 왕자 " 와  그의 일파인 " 요압장군 " 도 처형되는

변란이 격게되며, 특히 " 요압장군 " 은 " 다윗왕 " 을 능가하는 권력을  행사하다 죽임을 당한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런 골육 상쟁의 피를  흘린 후에 왕위에 오른 " 솔로몬  왕" 이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 할 때에
" 야훼 하나님 " 께서 " 솔로몬 " 에게 "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 " 고 물으시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서 "솔로몬왕"이  말씀 드리기를 " 저는 다만 하나님께서 저에게 통치를 맏기신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바른 통치를

할수 있는 " 지혜의 은사 " 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  하고  하나님께 말씀 드리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염원을
갸륵하게 여기셔서 " 지혜의 은사 " 를 허락하시고 그의 살아 생전에 부귀 영화도 같이  누리는 축복을 주시게 된다.

그리하여 "솔로몬 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윗왕이 건설하려고 했던 성전 건축을 마무리하고  하나님께 성전을 헌당하는

은사도 받는다. 바로 이 " 지혜의 은사 " 에 관한 이야기로   갓난 아기를 놓고 서로 자기의 아기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의 심판을 맡는 그 유명한 "솔로몬 왕 " 재판으로  "러면 이 아이를 둘로 쪼개어 반반씩 나누어 주라"고 하자
친엄마는 " 절대로 않됩니다 그냥 저 여인에게 주소서 " 하고 울부 짓고 놀라 울면서 떨고 있고,  다른 여자는

 " 나는 절대로 저 여자에게 이 아이를  줄수 없으니 그렇게라도 해 주십시요. " 하던  완악한 여자는 호통을 쳐서

야단 치고 감옥에 보내고 " 내 아이가 아니오니 아기를 죽이지 마시고  그냥 저 여인에게 주소서. " 하며
울부 짖던 여인이 친엄마라고 선언하며 친엄마에게 갓난 아기을 찾아 주었다는 "솔로몬 왕"의 재판 이야기다.

이렇게 판결한 명재판의 전설적인 " 지혜 " 이야기는 정말 유명하다 . 그래서 그의 재위 동안 그의 " 지혜 " 를
시험 당하는 일이 많이 일어나게 된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의 성전을 처음으로 완성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이스라엘 민족의 " 모세의 십계 " 가 들어 있는
법궤를 처음으로 성전 안에 모시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하나님 " 야훼 " 에 대한 종교의 중심지로 삼았다.

그러나 그는 부족간의 불협 화음을 잘 조화 하지 못하고 그의 치세에서 징병제도와 조세제도 ,그리고  강제 노동등의

국가 부역에 너무 백성을 힘들게 하고   부족을 무시한 정책으로 솔로몬 왕의 아들의 대에는 반대파에 의해서
그의 사후(死 後) 에는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하게 된다.

자......그런데 하여튼 멀리 지금의 " 에티오피아 "(또는 사우디 남부지역 현재 예멘이나 오만이라고 말함) 땅에
기원전 1000 년 경에는 " 시바 " 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여기에 절세 미인으로 알려 지고 또 " 지혜 " 롭기까지
하다고 소문이 쟁쟁한 " 시바의 여왕 " 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역사의 내용을 보면 " 솔로몬왕 " 이  이스라엘의 번영을 구가 하다보니 주변국들과 끈임없이 불가침 조약을

맺는것을 좋아하게 되고  하나님이 세운 " 지혜의 왕 " 이라는 소문 때문에 주변 국가들이 일부러 찾아 와서 친선을 도모하고
조공을 바치고 하니 이를 은근히 즐겼던 모양이었던가 보다.


급기야는 이 둘도 없는 " 미모와 지혜의 여왕 " 으로 소문이 자자한 " 시바의 여왕 " 을  마침내 이스라엘로 초대하는 일이

생기게 되고  또 동시에 무역을 통한 활발한 경제적인  유대 관계도 돈독히 하기를 원한다고  친서에서 말하고   다른 나라들과 같이
불가침 조약을 맺기를 원한다고도 하니  이 " 시바의 여왕 " 의 입장에서도 소문을 듣고  잘 알게 된 이스라엘의 " 솔로몬 임금 " 과는
나라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실제적으로는  전쟁을 벌일 일도 없고 불가침 조약이니 뭐니 사실은 논할 필요가 없음에도
오히려 " 솔로몬 왕 " 이 소문에 들려 오는 시바의 영왕의 아름다움과 지혜로운 여왕 이라는 바람에 너무 보고 싶었다 할까요

 

하여튼 주변국들이 바치는 조공과 선물  그 중에서도 이방 여인들의 상납이 많게 되자 결혼한 부인만도 700 명이요,
( 그 중에는 " 이집트의 파라오 " 의 딸도 있다한다 ) 후궁들만도 300 여명을 두었다고 한다.  얼마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는지 나라가 번창하고 강대 해져서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중동 지방에서 초 일류 국가가 되며 그의 사치와 번영과
영화가 극(極) 에 달했다고 한다.

이는 신약 성경에도  보면 예수님께서도  백합화를 가르켜 비유로 말씀 하실때 " 솔로몬의 영화 ( 榮 華 ) " 를 언급하셨을까
지금 까지도 왕들의 사치와 번영을 이야기 할때에 " 솔로몬왕의 영화 " 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 합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솔로몬왕 " 의 보물을 찾기 위해서  이야기도 많고, 탐험가들의 욕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도,
그리고 성전 건축에 얽힌 이야기 등에서 유래한  후리메이슨{Freemason) 의 이야기도 유명하다.
또는 중세 유럽에서도 성당 기사단 간에도 이 보물을  찾았다는 전설 속에 이야기도 아주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 솔로몬의 보물이나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찾으려고 애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법궤에 얽힌 이야기에서
단골로 으례히 등장하는 " 일루미나티 " 의 조직 이야기도 많은 작가들의 환상을 자극하는  영감을 주는 소재가 되었단다.

모두가 다 " 솔로몬 왕의 영화 " 에서 비롯한  작가들의 상상력에서 이야기의 꽃을 피운 것이라 말 할수 있겠다.

 

자........그런데 원래 " 전설 ( Legend ) " 이라는 것이 그냥 구두로 전해 내려 오는 이야기 인지라 하다 보면 년도도

좀 틀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각색되고  보태어 지고 더 로맨틱해지게 되기도 하지만  " 시바 여왕" 이 " 솔로몬왕 "을 한번
만나 보려고 가긴 가야 하는데 당시의 이동수단으로서는 보통 일이 아니었을게다


지금의 에티오피아(예멘 또는 오만) 남단에서 출발하여  약 3,000 km 가 되는 거리의 사막 지대를 3000 년전에 남북으로
가로 질러 갔었다고 생각 해 볼때에 거리가 너무 멀어 "시바의 여왕"이 가마를 타고 가기도 하고 낙타를 타고 가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고생이 막심 했을 것이다.

이 여행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3년만에 예루살렘에 도착 했다는 말도 있고, 13 년이 걸렸다고 하기도 하고...

그러나 시바의 여왕이 지혜를 발휘하여  자기가 하루에 멈출 곳을 일일이 포인트를 잡아 선발대를 보내어  여왕이 도착하면

새로운 가마꾼들이 새 가마와 일꾼을 준비하게 하고  낙타를 새로 바꾸어 타기도 하면서  모든 교통 수단을 동원해서
13 년 걸릴것을 7 년만에 갔다고도 전해진다.

" 시바여왕 " 의 행차에 대해서  여러 전갈을 들으면서   예루살렘의 " 솔로몬왕 " 은 여왕의 지혜로운 여행 방법에 감탄하며
그야말로 그 당시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된 강행군의 여행을 하면서,  많은 진귀한 향신료와 보물들을 산더미 처럼 가지고

" 솔로몬왕 " 을 찾아 갔다는 사실도 구약 성경에도 나온다고 한다.

" 열왕기서 상 " 을 읽어 보면 그 당시 상황을 기록 해 놓았는데 " 시바의 여왕 ( Queen of Sheba ) " 이 " 솔로몬왕 " 의 지혜를

시험 해 보기도 하고 , 양국의 무역 관계도 돈독히 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 했다고 기록했을 정도라고 하니 참으로 많은

보물들을 준비하여 솔로몬 왕을 시험하러 간 듯하다.

더구나 이방 나라의 " 여왕의 신분 " 을 유태인의  구약 성경에 그대로 기록해 놓은 것을  보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당시 솔로몬 왕이 얻은 소문에 의하면  이 " 시바의 여왕 " 은 미개한 나라의  여왕이고 요물이라  발이 돼지 발 같이

두개의 굽으로 갈라져 있고, 대신들의 말에 의하면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남자를 현혹 시켜 해( 害 ) 를 가하는
그런 요망스러운 여왕이라고들 했다 한다.

그러자  솔로몬 왕이 지혜를 발휘해서  성문앞에 나지막 하고 커다란 원형의 일종의  분수대 같은 것을 만들어 놓고
이 분수대의 정면이 자기가 서서 볼수 있는  망루에 위치하게 만들도록 했다한다.  그는 지혜롭게 생각 하기를 여왕의 발에 대해서
확인 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만일 그녀가 정말 발이 두 갈래 굽으로 갈라 져서 요망스러우면 분수대에 아무리 멀리서

오느라 물이  그립고 더워도 발을 않 담그리라 생각하고  만약에 그 녀가 정상인들 처럼 여인의 예쁜 발을 가졌으면  마음 놓고 발을

들어 내 놓고  분수대에 발을 시원하게 담그리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천신만고 끝에 정말  이 " 시바의 여왕 " 예루살렘 성 앞에 도착 하였고  얼마나 감개 무량 했을까 그 옛날 3000 년

전에 몇 년에 걸친 여행이라니  참으로 생각만 해도 대단한 여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분수대의 그런 지혜의 뜻이 있는 줄
모르는 여왕은 너무나도 시원한 물줄기와  넘실대는 분수대의 물을 보는 순간  얼마나 반가운지 가마에서 내려서 옷 자락을
걷어 올리고 시원스러운 물에 여왕의 예쁜 발을 보이며 물에 뛰어 들어 간다.

 

먼 발치 망루에서 이를 몰래 숨어서 보고 있던  " 솔롬몬왕 " 이 자세히 보니  돼지 발굽같이 두 가닥으로 발이 갈라졌다는
말은 그만 낭설로 밝혀 지고  궁금증이 희열로 바뀌는 순간이었지요  그리고 과연 여왕의 미모가 자기가 처첩을
1,000 여명이나 거느리고 있는데  아름답기가 비교도 않 되었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이 두 사람이 6 개월 동안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연회를 베풀고 가지고 온 선물을 모두 바치고  " 솔로몬왕 " 이 주는

선물을 답례로 받고   하나님의 천지 창조와 온 땅의 나라들의 고대 역사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이 세상의 모든 지식에
대해서 담론하고 서로의 지혜를 이야기 하며  갖가지 모든 어려운 질문이나 퀴즈 문제를 여왕이 물으니 참으로 놀라운 지혜로 "
솔로몬왕 " 이 대답해 주고....그만 여왕은   진정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 문제에 있어서도, 또 주변 국가간의 상호 불가침 조약에 관한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문화 전반에 걸쳐
참으로 대화가 끝없이 이어 졌을 것이도 그 동안 서로 궁금한 일들을 너무도 격의 없이 대화하며 세월 가는줄
모르고 희열이 가득 찬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 자존심 대결이 은근히  심하다 보니까 차마 서로 서로가 합방(合 房 )에 대한 이야기를 못 끄냈어요

어느듯 세월이 다 되서 이제 그만 " 시바 " 로  돌아 가 봐야 겠다고 여왕이 말하고, " 솔로몬왕 " 도 욕심에는 그냥 여기서 나와 같이
살자고 말하고 싶으나  차마 그럴수도 없고  그리고 보니 6 개월째 체면 때문에 합방도  못해 보고 정말 애간장이 탔을 것이다, ㅎ~~

그래서 드디어 여왕이 떠나기 전에 마지막 날  큰 연회를 마련하는데  솔로몬 왕이 지혜의 내기를 걸었다 한다.

" 이 밤이 다 지나 가도록 여왕이 내 모든  소유물들 중에 하나도 취하지  않겠다고 내기를 할수 있느냐 ? " 고 묻고,
항상 지혜로서 내기를 하고 알아 마치고 했으니까 여왕이 가만히 생각 해보니 내가 선물도 다 주고
선물도 또 잔뜩 받고 더 이상 내가 솔로몬왕의 소유물  중에서 취할것이 더 뭐가 있나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생각에 생각을 더 해 봐도 더 이상 가질게 없다고 판단이 나서 그럼 그렇게 하겠노라고 답하며. 그런데 내가 만일 왕의 소유물을

하나라도  취하면 벌칙이 무었이냐고 묻게 되고 " 솔로몬왕 " 이 그제서야 답하기를 내가 여왕과  합방 하기를 원한다고 말 했다한다.

여왕이 그의 제안을 재미 있다는 웃음으로  화답하면서 아무것도 취하지 않을 것을  약속 한다고 내기를 하게 됬지요

그런데 솔로몬왕이 이 날 따라 주방에 지시를 해서  아주 지독한 향신료와 소금을 많이 넣은  음식들을 준비하고,
이 날 따라 술도 아주 깊은 향이 나는 포도주로 마련하고..밤이 늦도록 연회를 베풀었지요....

드디어 연회가 끝나고 각자 술에 취한 상태로  처소롤 돌아 갔으나 " 솔로몬왕 " 은  여왕의 침실 밖에서 가지 않고 기다렸지요....

과연 밤이 늦어서 자다가 연회를 베풀 때 너무 짜게 만든 음식을 먹었던 여왕이 목이 타는듯한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잠이 깨서 잠 결에 손을 더듬어 물을 찾게 됬어요   얼마나 시원하게 많은 물을 마시고 목을 축였는지......
잠결에 왕이 몰래 숨어서 보고 있는줄도 몰랐지요

그런데 갑짜기 " 솔로몬왕 " 이 나타 나서  " 여왕이여...... 어찌하여 나의 소유물을 취하였나이까 ? " 하고 물으니 여왕이 당황해 하며
" 내가 취한것이 없나이다. " 했다.  그랬더니 " 여왕이여  이 물도 내가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내 전용 샘터에서 하인들이
길어 온 내가 소유한 물이니   어찌 내 소유물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말했지요......

여왕이 드디어 솔로몬왕과의 지혜의 내기에  자기가 처음으로 진것을 알게 되었고 드디어 내기에 진 여왕이 그녀의 마음을 열고
솔로몬왕을 그녀의 침상으로 맞으니  드디어 떠나기 전날 밤에  대단한 로맨스가 이루어 졌다는거지요....

다음 날 아침에 먼 길을 떠날 모든 준비를  끝 마치고 여왕이 떠나 가게 되니 참으로 꿈같은 시간을 보낸거지요
헤어 지는 날 " 솔롬몬 왕 " 이 그의 왕권을  상징하는 반지를 " 시바의 여왕 " 에게 주면서 " 당신이 만일 아들을 낳거던
이 반지를 가지고 나를 찾아 오게 해 주오. "

" 내가 그 아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빌고  그를 내가 아들로 맞아 들일것이요. " 하고  굳은 약속을 했어요..

너무나도 감격한 여왕이 굳은 약속을 하고는  다시 먼길을 떠나 헤어지게 됬어요...정말로 이 " 시바의 여왕 " 이 귀국하는 길에
때가 되니 아들을 낳게 되고 그의 이름을  " 메네리크 : Menelik " 라고 이름을 짓고 여왕은 유대 나라에서 시바로 무사히 귀국 했지요....

드디어 " 메네리크 왕자 " 가 무럭 무럭 잘 자라서  13 세가 되던 해에 여왕이 드디어 이 귀한 아들을 " 솔로몬왕 " 의 생전에
예루살렘으로 보내고 이 아들이  " 솔로몬의 아들 " 이라는 증거로 왕이 준  반지를 끼워 주고 예루살렘성에  찾아 가서 아버지를

만나게 했단다.

과연 " 솔로몬 왕 " 이 흡족해 하며 " 메네리크 왕자 " 를 환대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빌어 주며 그를 사랑하고......

전설의 이야기로는 그가 시바로 다시  귀국 할적에 자기의 적통을 인정하며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법궤와
모세 5 경에 해당하는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을 " 메네리크 왕자 " 에게 주어서 귀국하게 했다지요

하여튼 지금도 에티오피아는 건국의 아버지로 " 메네리크 왕 " 으로 말하지요. 에티오피아인들중에 현재에도 히브류말을
쓰는 종족이 있는데  20 여년전에 대 기근이 에티오피아에 닥쳤을 때에  이스라엘에서 전세기를 동원 해서 굶어 죽지
않게 하려고 이 히브류 말을 쓰는  약 25,000 여명의 달하는  이 에티오피아인들을 이스라엘로 후송해 왔다 한다.

참으로 이런 점이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태인의  우월성을 말해 주는 일화라고 생각해요  바로 이 히브류 말을 쓰는 에티오피아인들이
" 메네리크 왕 " 의 즉 " 시바의 여왕 " 과  " 솔로몬왕 " 의 자손들이라는 거지요지금도 에티오피아에는 유태교 신전과
하나님을 섬기는 유태인들의 종교가  그 나라에 있고  기독교도 있고   이스람교도 물론 있다.  

 

재미있게 작성된 글이 있어 함 편집해 보았습니다.  에구 시간 제법 걸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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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골짜기 중에 골짜기 이곳을 알 수 있는 사람은 그곳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면 모를까?

아는 사람도 찾아갈수 있는 사람도 없을 듯 하네요~~~ 오늘 사무실 업무차 들렸던 곳이랍니다.

산넘고 터널 빠지고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 재미있게 서있는 장승을 만나 한컷 하여봅니다.

 

 

 

짦다란 다리에 가운데 거시기가 달려있는 잼있는 장승이 있어 올려봅니다. ㅎ~~~ 대장군 답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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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의 나팔>

 

< 노오란 나리꽃>

 

 

<베고니아>

 

<펜지>

 

<능소화>

 

 

<능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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