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모처럼 시간 자투리 시간을 내어 평창에 구전으로 내려오는 조판서묘에

관한 전래 이야기를 확인하고 샘터 이야기를 듣고 찾아 나섰다.

영하의 혹한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남병산을 헤메어도 찾을 길이 없어 되돌아

산을 내려오려는 터에 산판을 하느라고 올라온 GMC 차량을 정비하던

기사에게 물으니 그 곳 지형을 잘 알아 나에게 일러 주신다.  그 운전기사님이

일러준대로 길도 없는 산속을 헤메이다. 비교적 정리가 잘된 조판서묘지를

확인하고 내려오는 길에 샘터에도 들려 목한잔 축이고 내려와 본다.

 

평창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평창읍편 전래설화 이야기인즉 아래돠 같다.

 

<평창과 방림, 대화를 경계로 하고 있는 하안미리 남병산(1149m)의 800고지에

조판서 묘지로 알려진 무덤이 있다. 조선시대 병조판서를 역임한 용인인

조판서가 죽자 묘지를 정하여야겠기에 지관에게 물으니 남병산에 묻어야 좋으며

그렇게 하면 50년 후에 그 산에서 은이 산출될 것이라 하였다.

 

맏아들이 그 위치를 알 수가 없어 북간도로부터 함경북도를 거쳐 강원도 금강산 등

사방을 헤매었으나 남병산을 찾을 길이 없어 할 수 없이 대관령을 넘어

이곳 하안미리 사초거리에 와 여장을 풀고 일박을 하게 되었다.

이튿날 마을 청년 한 사람이 "야! 남병산에 나무하러 가자"고하는 소리를 들은

맏아들이 남병산이 이곳에 소재하고 있음을 알아 내고 선친의 묘자리가

될 만한 곳을 찾아 보니 과연 명당으로 여겨지기에 유골을 경기도 용인으로부터

이곳으로 옮겨 안치시켰더니 별 탈이 없이 집안이 번창하였다고 한다.


조판서의 묘지로 알려진 이 무덤은 사실은 종사랑을 지낸 맏아들 규완의 묘지이다 >

 

* 확인 사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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