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답사일시 : 2010년 4월 16일(금)

2. 장      소 : 강원 평창군 평창읍 하리 평창경찰서 영내 소공원

3. 답사후기

   주 5일 근무제로 바뀐지가 몇해가 되었는지 이제는 주간 5일 근무가 타성에 젖어 언제부터 시행되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다만, 5일 근무 초기에 우리직장은 가족별거자들에게 주어지는  월2회 격주 토요일

   휴가제도를 시행했던 시기처럼 연가를 얻는 즐거움이 있었으나 이제는 금요일이 되면 의례이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우리들의 보금자리로 한시라도 빨리 가고픈 생각뿐이다.

 

   그러나  다음주 초부터 시작되는 나의 업무량이 만만치 않은 느낌이라 오늘도 오전내내 그리고 점심식사

   종료하기 바쁘게 사무실로 돌아와 다음주를 준비하는 분주하기만 한 4월 중순의 금요일 오후일 뿐이다.

 

   이렇게 분주히 오후일과를 보내며 잠시 자투리 시간을 내어 사무실밖 정원에서 바람을 쏘일때 문득

   지난 주 내가 즐겨찾는 블로그에서 강원도의 석탑을 검색하다가 평창경찰서 뜨락 소공원에 위치한

   석탑이 떠올라  다시 사무실에 들어가 카메라를 들고 나와 평창경찰서 영내의 석탑을 답사하여 본다.

 

   평창경찰서 정문을 들어서 청사앞을 지나 왼쪽 테니스장 우측편 소공원내에 위치한 석탑은 어림짐작으로

   훑어보아도 예사 석탑은 아닌 듯 보인다.  신라말이나 고려초기 석탑으로 보여지는 이 탑은 탑을 세워놓기 위한

   지대석은 새로운 화강암에 복련형태의 문양을 넣어 석탑의 1층 몸돌 괴임석을  올려놓고 1층부터 4층까지의

   옥개석(지붕돌)은 비교전 온전한 편으로 복원되어 있었고 5층 옥개석과 3층 4층 탑신석(몸돌)은 최근

   화강암으로   맞추어 복원하여 놓여져 있다. 그리고 1층, 2층, 4층 탑신석은 옛 몸돌 그대로 이다.

   1층과 2층 탑신석에는 양 우주가 희미하게나마 확연하게 보인다. 그리고 옥개받침(지붕돌 받침)은

   4단으로 되어 풍화작용이 매우 심하다.  1층 탑신석은 비교적 정사각형의 몸돌로 구성되어 안정적이나 2층

   탑신석부터는   몸돌 크기가 급격히 줄어들어 그 체감률이 매우 급하며  강한 바람이라도 불면  넘어갈 듯

   급경사이다. 또한 옥개석(지붕돌)의 낙수면과 우동은 반전이 심하게 치켜 올라가 있고, 5층석탑의

   우측 5m앞에는  탑의 유래에 대하여 화강암에 아래와 같이 음각하여 놓았다.

 

   "탑의 유래"

 

   " 이 탑은 평창읍 조동리 서쪽 1Km 장암산 기슭 사찰입구에 위치 하였던 탑으로 전해오나 현재는

     절터 500여평과 주춧돌만 남아 있을뿐 오랜세월 풍우에 씻겨 글자의 흔적은 알 수 없고  신라시대의

     탑으로 추측되며 예전부터 이곳 주민들은 이 탑과 절이 있었던 곳을 탑상골 또는 절터라고 부르고

     있으며, 일제시대인 1930년경 일본 경찰에 의해 "평창 주재소"로 옮겨온 것을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구 경찰서터에 보존타가 1997년 8월8일 현청사 준공으로 다시 이전 하였음" 이라고 적혀있다.

  

   이에 탑의 유래를 보고 나는 이 무명탑을 "평창읍 조동리 5층석탑" 이라고 스스로 명명하여 본다 *^^*

   탑의 형태로 볼때 평창읍 유동리 5층석탑과 매우 흡사하기도 한듯하다. ㅎ~~~

  

   업무에 지쳐 찌푸렸던 오늘 오후가  가까이에 위치한 무명 5층석탑의 우리 문화재를 답사하면서

   답답하기만 하였던 가슴이 후련해 지는 듯한 오후가 된 느낌은 왜일까?~~~~~~~

 

4. 답사 사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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