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이라는 사람, 참 아름다운 사람이다.
요즘 남자의 자격때문에 마음이 평화롭다.
김태원이 만든 합창곡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를
듣다보면 처음엔 김태원이 합창곡을 썼다는 음악적 역량에
놀라고 나중엔 가사의 깊이에 놀란다.
대중음악을 하는 가수가 합창곡을 썼다는 이야기를 일찌기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것도 아카펠라 곡이다.
프로그램에선 아직 연습과정이던데 그 멜로디의 유려함이
기존 합창곡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아카펠라가 갖는 교회음악 특유의 경건미에
김태원이 예의 보여주는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이 만나니
속수무책으로 귀가 노래에 달라 붙는다.
고등학교 때부터 성가대를 한 내겐 격조있는 가스펠을 합창곡으로 듣는 느낌이다.
한국의 넬라 환타지아가 탄생한듯 하다.
집사람이나 나나 하루 종일 입에서 멜로디가 떠나질 않는다.
언젠가 김태원이 음악통론을 독파했다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못 생기고 공부못하고 성실하지도 못한 소외당한 한 소년이
주목받기 위해 만지기 시작했다는 기타와 음악이 어느새 이렇게까지
진보한 것이다.
김태원 특유의 멜로디가 우리의 감성을 자연스레 사로잡았다면
김태원의 가사는 실로 압도적이다.
김태원을 87년부터 좋아했다.
김태원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는 나의 영웅이었으니까
나는 아직도 김태원의 예능이 낯설다.
나의 뇌리에 각인된 김태원은 상처입은 괴물처럼
울부짖던 질풍노도의 록커였다.
그런 그가 이렇게 변하다니
사랑을 잃어버리고
동료에게 버림받고
그 상처에 결박당한채 자포자기하고
차라리 교도소는 피난처였다.
헌신적인 아내의 사랑을 디딤돌로 삼아 다시 일어난
그는 진정으로 부활의 리더가 되었다.
어떤 밴드에게도 부활이라는 이름은 감당할수 없는 큰 이름이다.
너무 커서 촌스러운 이름이다.
그런데 김태원은 진정 부활의 주인공으로 살아왔다.
그는 25년째 부활의 리더다.
죽지 않으면 부활할수 없다.
한국의 록밴드에게 가난과 고난은 상식이다.
이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해야 부활할 수 있다.
부활이라는 이름은 이제 김태원과 하나가 되었다.
부활은 김태원이다.
김태원의 비범한 내공은 이제 음악을 넘어 인격으로까지
승화되었다.
그는 사람을 귀히 여긴다.
그가 하는 한마디 한 마디에 인간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이 아닌듯하다.
작금에 그가 얻은 인기가 여기에서 왔다고 나는 믿는다.
박완규와 정단과 이성욱, 여전히 가난과 고난에 처한 옛 동료들을
인기연예인된 김태원은 다시 부활의 이름으로 세상에 세운다.
위대한 탄생에서 누구도 선택하지 않은 손진영을
처절하게 진정성하나로 버티던 20년 전의 나라며 구원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는 25년 부활로 살아온 김태원의 성찰이 오롯이 새겨져있다.
삶이란 지평선은 끝이 보이는 듯해도
가까이 가면 갈수록 끝이 없이 이어지고
저 바람에 실려가듯 또 계절이 흘러가고
눈사람이 녹은 자리 코스모스 피어었네
그리움이란 그리움이라는 이름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
서로를 간직하며 영원히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기에
바람에 실려가듯 또 계절이 흘러가고
눈사람이 녹은 자리 코스모스 피어었네
또 다시 가려무나 가려무나
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
세월아 가려무나 가려무나
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
세월아 가려무나 아름답게
다가오라 지난 온 시간처럼
인생의 한치 앞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인생은
김태원의 고백처럼 삶은 지평선처럼 아득하다.
끝이라 여기지만 거기도 누군가의 치열한 삶의 현장일 뿐이다.
시지프스 신화처럼 끝을 알수 없는 고난에 낙심하여 절망하여
사태나듯 한번도 무너져내리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눈사람이 녹은 자리 코스모스가 피었네"
눈사람이 녹은 자리는 얼음처럼 차가운 눈물이 흥건하다.
낙심의 눈물은 얼마나 외로운가!
그런데 그 눈사람이 녹은 자리에서 코스모스가 피었다.
차가운 눈물이 코스모스를 낳은 생명수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코스모스는 우주이다. 요행도 우연도 아니다.
우주의 섭리였던 것이다.
끝없을 것 같던 절망의 시절도 바람이 흘러가듯 지나가더란다.
그리고 새로운 우주가 시작되더란다.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해본 사람만이 할수 있는 성찰이다.
이 가사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당면했던 순간에는 무너질듯 위태했지만 다 지나고 돌아보니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무슨 조화인가?
그렇게 그리움이란 이름은 살아남은 자를 위한 승리의 증거인지 모르겠다.
못 견디겠던 고난의 그 순간도 그리울 수밖에 없는 인생의 섭리라면
그리움에 사랑을 더하라고 김태원은 권면한다.
어차피 그리울 것이라면 차라리 사랑해버리라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찰나의 처세가 아니다.
고난의 눈물 골짜기를 지나 온 자의 통찰이다.
그러면서 죽음의 절망에서 해방된 자유혼 만이 외칠수 있는 기백으로
김태원은 당당하게 외친다.
'가려무나 가려무나 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
세월아 가려무나 아름답게 다가오라 지나온 시간처럼'
지나온 시련은 이유있는 시험이었다. 뜻이 있었다.
그러니 다가올 시간도 두렵지 않다.
어떤 시련이 또다시 온다 해도 뜻이 있을테니 말이다.
새로운 코스모스를 피울 이유가 되어줄테니 말이다.
이제 두려움은 없다.
시련에게 다가오라고 정정당당하게 노래하는 사람에게 시련이 주눅들어 도망가겠다.
그리움이란 단어에 깊고 도도한 위로를 담고
사랑과 소망이라는 단어에 보석처럼 단단한 비전을 담았다.
마치 창공을 향해 솟구쳐오르는 독수리의 우아한 활공을 보는 듯한다.
김태원은 상처입은 치유자다.
그의 성찰어린 고백에서 용기를 얻는다. 진짜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는 그리스도인인 내겐 성경의 한구절같은 가사이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어떤 악도 하나님과 함께라면 선으로 승화된다.
참 놀라운 노래가 세상에 나왔다.
내 영혼을 부활시키는 인생의 노래가 나왔다.
이 놀라운 노래를 52세 이상 인생의 황혼을 향하는 장년들이 청춘의 이름으로 합창한다.
청춘은 가장 좋은 시절을 말할 것이다.
어떤 이는 암수술을 하고 노래하고
어떤 이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노래하며
어떤 어머니는 아들을 잃고 노래한다.
가장 고통스런 순간에 청춘의 이름으로 노래한다.
단순히 가장 좋았던 시절을 추억하기 위해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 노래의 가사처럼 지나간 모든 시간속에 이유가 있었음을 믿고
장차 다가올 시간에도 이유가 있음을 믿고 노래한다.
청춘합창단은 아직 가장 좋은 시절은 오지 않았다고 노래하는 것 같다.
노래는 확실히 영혼의 일이다.
노래에는 사람을 살리고 인생을 회복시키는 위대한 힘이 있다.
노래하는 사람을 아무도 이기지 못한다.
고난도 심지어 죽음도 말이다.
그 증인들이 이 청춘 합창단이다.
노래하는 인생이 놀랍다.
노래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출처]인생의 노래, 청춘합창단,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 [작성자] 양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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