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답사일시 : 2011년 6월6일(월)

2. 답사장소 : 원주시 흥업면 서곡리(용수골)

3. 답사후기

    2004년도 내가 처음으로 "문화유적답사회" 란 카페에 가입하고 디지털 카메라를 준비하여 우리의 옛님들을 답사하며 최초로 카페에 올렸던 것이

    용수골에 위치하고 있는 서곡리 석탑재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당시만 하더라도 서곡리 석탑재는 용수골 마을휴양지 매표소 입구 솔밭아래에

    오고가는 사람들 잠시 앉아 쉬어가는 의자와 탁자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옛님들의 답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며 지금은 마을이장과

    지역에 오랜동안 살고 계시는 분들이 탑재를 모아  보호하고 있으며 오늘 서곡사지에서 만난 70대 중반의 폐사지의 토지주인을 만나 그동안의

    서곡사지에 대한 내력도 직접듣게 되었다.

    서곡사지(후리절) 토지 주인의 말에 의하면 수년전만 하더라도 서곡사지는 밭으로 사용되었고 이후 논으로 개간하는 과정에서 밭아래에 뭍혀있던

    탑재의 지대석과 기단석들이 출토되어 포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지금의 논두렁에 올려 놓았다 한다. 또한 포크레인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일부

    기단석이 동강이 났지만 탑재의 기단부 일부는 지금도 논두렁에 위치해 있고  탑신부의 몸돌한개는 토지주인의 뜨락에 옮겨다 사리공이 있던

    탑신을 돌절구로 아마도 사용한듯 하다. 그리고 또다른 기단석 한개는 서곡리를 오가는 정류장에 돌의자로  사용하고 있다기에 여러 탑재가

    있는 부분을 답사하여 본다.

    다행이도 이곳 이장님과 뜻있는 어르신들이 가급적 빠른 시일에 흩어져 있는 석탑재를 한데 모아 지금의 솔밭에 탑을 복원해 놓겠다고 하지만

    자자체 행정당국의 관심이 더욱 요구되어집니다.

4. 답사 사진자료

 

 

 

 

< 논두렁에 방치되어 있는 석탑재 입니다. 석탑이 있던 밭을 논으로 개간하면서 이 석탑재들을 현재의 논두렁으로 옮겨 놓았다 하는군요, 토지주인의 이야기로는 석탑재

   를 포크레인을 이용해 옮길대 일부는 깨어졌다고도 합니다. 풀숲에 놓여진 석탑재의 버팀기둥(탱주)의 양각현태가 확연하고 혹 1층기단면서으로 보여지나 다소 높은

   편이로 보여집니다.  >

 

 

< 토지주인 아저씨가 자기집 대문안에 탑몸뚱이가 있다고 해서 찾아가니 아주머니가 안계셔서 대문밖에서 확인한 탑신석으로 용수골 솔밭에 위치한 지붕돌을 볼때에

   2층 몸돌로 보여지는 탑신석 1기가 뜨락 구석에 놓여져 있군요(전에 돌절구로 사용한것으로 추정됨)  대문사이로 담은 사진자료에 모서리 기둥이 확연히 보여지며

   문헌에는 문비가 새겨져 있다고 하는 군요>

 

 

 

 

 

 

 

 

 

 

< 7전전만 하더라도 용수골 마을휴양지 매표소 입구에 의자와 탁자로 쓰이던 탑재인데 가지런에 쌓아 놓았군요 ㅎ~~  앞의 석재는 배례석으로 보이며 둘레에 2미터 크기의 다듬은 석재는 지대석으로 쓰이던 석재 같아 보입니다. 맨아래 부분의 석재는 자세히 살펴보니 가장자리에 모서리 기둥이 양각되어 보이고 가운데에는 버팀기둥이

양각되어 보이는 것이 2층기단의 면석으로 보여지며, 두번째 석재는 2층기단 갑석위에 별도로 1층 탑신괴임석으로 사용하던 복련형태의 괴임석으로 보여지면 그위에

1층과 2층 지붕돌로 보이는 탑재가 올려져 있습니다. >

 

 

 

 

<서곡리에서 원주방향으로 가는 아스콘 도로변 정류장( 청솔보리밥집 옆 정류장)에 의자로 사용하는 석탑재입니다. 길이가 대략 3미터는 되어보이는 매우커다란 석재

  이며 우측에 모서리기둥과 가운데 버팀기둥이 양각되어 있는 것이 확연히 보이며  이 석탑재도 1층 기단면석으로 사용되었던 탑재로 보입니다.>

 


< 2005년도 석탑재 모습을 담았던 사진자료입니다.


 

 

 

 

 


 

1. 일     시 : 2011년 5월 30일(월)

2. 장     소 : 입석사 대웅전 앞

3. 답사후기

4. 사진자료담기

 

 

 

 

 

 

 

 

1. 일     시 : 2011년 5월 30일(월) 11:00 - 14:00

2. 장     소 : 원주 치악산 비로봉(1288m)

3. 후     기

   어제 갑자기 하루 쉬게되어 구둘장지고 있기도 그렇고 무작정 배낭메고 나와 한바퀴 둘러본다.  비록 돌탑을 세운지는 50여년 되었지만

   정상에 세개의 돌탑을 세운 것이 불가사의 하기만 하다.

4. 자료사진들(오른쪽부터 용왕탑, 산신탑 , 칠성탑이라고 한답니다)

 

 

 

 

 

 

 

 

 

 

1. 답사일시 : 2011년 3월 19일(토)

2. 장      소 : 원주시 개운동

3. 후      기

4. 자료사진모음

 

 

 

 

 

 

 

1. 일       시 : 2010년 7월 4일

2. 답  사  지 : 강원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영원산성

3. 답사 후기 : 원주 팔경중의 하나 영원산성을 고교동창들과 찾아 보았습니다.

                    참고 : 원주팔경

                       제1경 천년의 고찰 구룡사

                             제2경 500년 강원도의 수부(首府) 강원감영

                             제3경 보은의 전설을 간직한 상원사

                             제4경 치악의 사계 치악산 비로봉

                             제5경 기암절벽과 맑은 물의 간현관광지

                             제6경 호국영령의 성지 영원산성

                             제7경 천주교의 성지 용소막성당

                             제8경 한폭의 동양화 같은 미륵산 미륵불상  

 

                    영원산성

 

                     지정사항: 강원도기념물 제27호

                    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포곡식 석축 산성. 
                    치악산 남서쪽에 있는 산성으로, 지금은 대부분 무너진 상태로 돌무더기처럼 쌓여 있다.
                    대체적으로 상태가 좋은 동쪽 부분의 성벽 높이는 2m 가량이며 비교적 가지런히 쌓았다.

                    축성연대에 대해서는 문무왕 때 쌓았다고 하는 견해가 있지만 892년(진성여왕 6)에

                    궁예가 치악산 석남사를 근거로 인근 고을을 공략하였다는《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궁예가 축조하고 근거한 성곽이 이 산성일 가능성이 많다.

                    산성의 당시 규모는《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둘레가 3,749척이고 성 안에

                    우물 1개소, 샘 5개소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291년(충렬왕 17) 원나라 합단군이

                    침입해 왔을 때 원주의 향공진사 원충갑(元沖甲)이 10여 차례에 걸쳐 적을 무찔러

                    이 성곽을 지킨 역사가 있으며, 또 1592년(선조 25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에는

                    원주목사 김제갑(金悌甲)이 왜군과 대적하여 일부 적군을 무찔렀으나 힘의 부족으로

                    산성이 함락되어 그의 부인 이씨와 아들 김시백(金時伯)과 함께 순절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에는 원주와 이웃 고을 주민들이 이 성에 들어와서

                   지키는 곳으로 근처 금대산성이나 해미성과 서로 의지하여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4 .답사사진

 

 

 

 

 

 

 

 

 

 

 

1. 답사일시 : 20101년 6월 17일(목)

2. 답사장소 :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흥양리 입석사

3. 답 사 사 진 자 료

 

 

 

 

 

 

 

 

 

 

 

1.  일         시 : 2010년 3월 22(월) 12: 30  - 13:00

2.  장         소 :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흥법사지

3.  답   사   기 : 동화사지 부도골 찾아 헤메이다. 주린배를 채우느라 문막읍 건등리에서 중식을 하고

                      다시 안창으로 차량을 돌려 흥법사지를  답사할 진대  갑자기 진눈개비가 내린다.

                      코끼리 다리 훑어 보기식 흥법사지 답사를 하여 본다.

4. 답사 사진자료

 

 

 

 

 

 

 

 

 

 

 

 

 

 

 

 

 

 

 

1. 답사일시 :2010년 3월 22일(월)

2. 장      소 : 원주시 봉산동 신선암 입구

3. 답사유적 : 원주 봉산동 신선암 석조보살입상

4. 답  사  기 : 모처럼 하루를 쉬게 되었다. 업무할 행정용품을 구매후 복귀하는 길에 봉산동 신선암 석조 보살입상을 답사하고

                   차량을 문막방향으로 돌려 몇년전 폐사지를 답사하였던 동화사지 부도골을 찾아 가기로 마음먹고 동화골로

                   차를 몰아 동화골 임도 입구에 차량을 세우고 임도를 따라올라 부도골을 찾아 나서니 도대체 어느 골짜기가

                   부도골인지 알 수가 없어 다시 되돌아 내려오다. 청산리 벽계수 이종숙 묘 입구에서 한컷하여 본다.

 

                     << 원주 문화원 신선암 석조보살입상 설명 >>

 

                         신선암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이 보살입상(菩薩立像)은
                    높이1.7m정도이며, 좌대는 0.5m정도로 시멘트를
                    이중으로 쌓아 기단을 삼았다. 본래는 철로변에 있는
                    천주교 공동묘지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머리는 고깔모양의 익선관(翼蟬冠)을 쓰고 있으며
                   눈과 코, 입은 마멸이 심하다. 얼굴은 풍만한편이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왼손은 자연스럽게 내려 
                   법의(法衣)를 쥐고 있고 오른손은 가슴에 두었다.
                   법의(法衣)는 양어깨를 덮은 통견(通肩)으로 가슴
                   아래에서 U자형태를 하다가 허리부분에서 다시 
                   양편으로 갈라져 있다.

                   이 보살입상(菩薩立像)은 다소 파손이 되었으나
                  크기나 조각에 있어서 우수한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양팔을 타고 내린 법의(法衣)는 다소 무거운 느낌을
                  주면 후덕(厚德)한 얼굴과 풍부한 느낌에서 고려초기의
                  유물로 추정된다. 현재 무릎 밑부분이 땅에 묻혀 있으며,
                  제작시기나 본래의 위치 등에 관해서는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5. 답사 사진

 

 

 

 

 

 

 

 

1. 일       시  : 2009년 7월 4일(토)

2. 장       소  : 횡성군 강림면 부곡리 태종대와 부곡계곡

3. 관련 사진자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