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사지는 귀래면 주포리 산 25-2번지 황산골에 소재하고

있다. 황산사지에는 석조대웅전, 목조산신각, 요사 등 3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전한다.

황산사(黃山寺)는 신라 경애왕대(924-926)에 지어졌다고 하

며, 창건이래 고려·조선조를 거쳐 연산군대(燕山君代)에 이르

러 폐사(廢寺)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경순왕의 공주가 이 절에 와서 부왕(父王)의

존상(存像)을 산정 석벽(山頂 石壁)에 조각케 하였고, 그 후

경순왕이 직접 이곳에 와서 존상(存像)을 보고 환경(還京)한

후부터 산명(山名)을 대왕산(大王山)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귀한 분이 왔다 하여 동리 이름을 귀래(貴來)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황산사지 뒷산은 미륵산으로 불려지는데, 이는 정상에 대형의

마애불이 있기 때문으로 마애불은 미륵산 상봉의 거대한 바위하나에

조각하여 약 4km 밖에서도 그 형태를 식별할 수 있다.

황산사지에는 고려(高麗) 전반기에 세워졌던 것으로 보이는

석탑 1기와 아울러 석조부도 2기가 있는데, 학서당부도(鶴西堂浮屠)와

서응당부도(西應堂浮屠)이다.

이는 석종형(石鐘形) 부도로 대석(臺石) 1석(石)과 신석(身石) 1석(石)으로

구성되어 있다. 황산사지(黃山寺址)는 고려시대의 것이고 석등부재도

고려시대의 조성품이나 부도 2기(基)는 모두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학서당(鶴西堂) 부도는 대석(臺石)과 보주(寶珠)에

큼직한 앙련(仰蓮)이 새겨져 있어 주목된다. < 퍼온 글>

< 도리 답사기>

언젠가 미륵산을 꼭 오르고 싶었던 마음에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가족 가사일을 얼렁뚱땅 도와주고 함께 원주시 귀래면 주포리에

위치한 미륵산을 찾아 보았습니다.

원주시 흥업면 한라대학교가 위치한 무명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가

흥업면 대안리를 따라 대안 저수지를 우로하고 문막읍 비두리로

향하는 포장길로 노루재를 넘어 비두리에서 귀래리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귀래방면으로 내달리니 아홉사리 재 정상에서 미륵산으로 향하는

시멘트 포장길이 나오던 군요

아홉사리재에서 1.5킬로미터 쯤 되는 위치에 황산사지 입구가 나오고

도로면 적당한 공간에 차량을 주차하고 산을 오르니 그입구에는

경순왕영정각을 세우는 역사가 한창이더군요 공사장 좌측으로 돌아

등산 안내 간판을 따라 30여분 오르니 황산사지가 나오고

다시 20분정도 오르니 미륵산 정상(미륵봉)에 다다르니

거대한 암반에 새겨진 미륵산 마애불이 천년의 세월동안

동쪽 백운산을 바라보며 자리를 지키고 있더군요

미륵산 미륵불과 황산사지는 위의 펌 글에서 참고 하시구여

모처럼 땀흘리는 하루가 되어 상쾌하기만 합니다 ㅎㅎㅎ








 

 

지난해 카페에 올렸던 글 입니다.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강원도 원주시의 "원주 법천사지" 4만5천여 평을
사적 제 466호로 지정 했다고 지난 25일 밝혔다.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동문선' 등의 문헌에 전하는 법천사는 신라말 산지
가람으로 세워져 고려시대에 이르러 대대적으로 중창된 사찰이다.특히 화엄종과 더불어
고려시대 양대 종단이었던 법상종의 고승 정현이 주지로 있어 법상종 사찰로 번성했고,
국사였던 지광국사 해린이 왕실의 비호아래 법천사로 은퇴하면서 크게 융성했다가
임진왜란때 전소 됐다.
법천사에는 한국의 묘탑 가운데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지광국사현묘탑(국보제101호)과
탑비(국보 제59호)가 문종에 의해 세워졌다. 지광국사 현묘탑은 일제에 의해 경복궁으로
옮겨졌으며, 법천사지에는 탑비를 비롯해 지광국사현묘탑지와 부도전지, 당간지주 등이
남아 있다.
법천사지는 2001년부터 2004년에 걸쳐 실시한 4차례의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까지의 건물지 19동과 우물지 3개소, 석축과 담장유구, 계단지, 금동불입상
연화대석, 각종 기와, 자기류 등의 유물이 확인돼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법천사지는 인근 여주 고달사지, 원주 흥법사지 등과 함께 옛절터 기행의 명소로
꼽혀왔다. 이들 절터는 모두 남한강변이나 원주 섬강변과 가까운 곳에 위치, 예로부터
강이 교통의 중심이라는 것을 잘보여준다.
<원주 내일신문에서 옮겨옴>

원주에서 서쪽으로 지정면 안창리에 위치한 흥법사지가 있다.
영봉산 아랫자락에 있는 흥법사가 언제 처음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연국사 영준이 932년(고려태조15년)에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이곳에 있었던 진공대사탑비에서 진공대사가 940년(고려태조23년).
이곳에서 입적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미 신라말에 거대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흥법사가 언제 없어졌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조선시대 전기까지 절과.
진공대사탑에 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1693년(숙종19년) 이곳에 도천서원을 건립하였다가.
1871년 폐지 하였다 하며, 지금은 절터의 축대와 삼층석탑, 그리고 진공대사.
탑 귀부및 이수만이 홀로남아 있고, 절의 북동쪽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었던.
진공대사부도탑은 일제시대 반출되어 경복궁에 자리잡고 있다 한다.






 
강원도에도 봄이 찾아 오는가 봅니다.

노오란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하아얀 목련이 고고한 모습으로 수줍은 듯

가슴을 드러내듯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핑크 빛 벛꽃도 꽃망울을 지우고 이제나

터뜨리려나 기다리는 듯 한 따스한 봄날에

제가 가입하던날 주인장께서 말씀하시던 원주시 호저면 용곡리에

위치한 용운사지 문화유적을 찾아 보았습니다

 

 

                         <원주시 호저면 용곡리 용운사지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원주시 호저면 용곡리 용운사지 삼층석탑>

 

구전되어 오던 우리지역(원주)문화재를 검색하다 우연히 이순우씨가 저술한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관한 조사 보고서"라는 책을 접하고서 몇자 적어 봅니다

원주지역의 문화재가 대량 반출된 시점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치하 1915년 봄으로
추정된다. 이는 1915년 9월 15일 부터 10월31일까지 50일간 경복궁에서 열린
"시정오년 조선물산 공진회"가 열리면서 라고 합니다. 

이때 야외전시유물로 수집의 표적이 된 지역이 바로 원주지역인데, 이는 그당시 "세키노
타다시"라는 일본인 일행의 "고적조사보고"에 의해 원주지역의 문화재가 세상에 드러난
탓이라고도 말합니다. 세키노는 조선총독부의 촉탁으로 1912년도 고적조사일정에 따라
원주지역을 그해 11월에 탐방하였고, 1914년 공진회장 건립이 구체화 될때 , 원주지역
문화재들은 야외전시유물 수집의 표적이 된 듯 합니다..

더구나 육로 수송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그당시 원주지역은 남한강의 지류인 섬강이 위치해
수운의 발달로 마포에서 황포 돗배가 일제 말기까지 원주시 문막읍(현재 문막1리 물굽이
마을)지역까지 드나 들었으니 수운을 이용한 운송수단의 용이성은 원주지역 문화재가
반출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으리라 추정되기도 하구요.

이 순우씨가 저술한 "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관한 보고서"에 의하면

이때 반출된 문화재들을 나열해 볼 때 1911년경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경복궁 공진회 야외전시유물의 으뜸자리를 차지했던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법천사지에
위치해 있던 지광국사 현묘탑<국보 제101호>이 최초로 반출된 듯 하고, 이후 지정면
안창리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보물 제365호>, 부론면 정산리 거돈사지 원공국사승묘탑
<보물 제190호>, 원주시 가마지 절터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원주 철불 5구, 영전사지
석불 2구를 비롯하여 원주시 태장동 영전사지 보제존사리탑<보물제358호>2기 등 석탑 4기
(2기는 현 천수사 3층, 5층석탑으로 추정됨)를 공진회장으로 반출해 갔으니 가히 싹쓸이
하다시피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구전으로 전해지는 전 흥법사지염거화상탑<국보 제 104호>도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일제시대 원주지역에서 반출된 것이라 추정되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 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위에서 열거한 이들 문화재는 그들의 고향을 떠나 경복궁뜨락이나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자연 부락 명칭인 탑전(탑이있던 밭)마을에 탑이 없어지고,
페사지 부도골에 부도가 없음은 일제시대때 모두 반출해 감으로써 그러하지는 않을까?

문화유적답사회에 처음 가입하고 디카 첨으로 구입해서

아주작게 담은 최초 나의 작품사진 2005년 1월 22일의

서곡리 석탑재 모습입니다.  용수골입구 마을 휴양지로

매표소 입구에 의자로 사용하던 석탑재 입니다 ㅋ~~~

< 원주시 판부면 서곡리 용수골 입구 석탑재 >

 

 

 

 

 

<거꾸로 놓여져 옥개석이 보이네요>

 

 

언제 어떤 사찰에 석탑인지 모르지만 노송아래 뉘어진 모습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실런지요, 어찌보면 쉼터의 의자로 생각하고 계시는 건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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