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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행일시 : 2007년 6월 30일

2. 어디에서 : 영월 봉래산 꼭대기 별마로 천문대에서

3. 누 구 와  : 누님내외분과 가족등 4명이서

 * 이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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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건반의  선율을 따라 사랑은 흐르고 제주의 푸른창공을

누비며 하늘을 사랑하는 이에게 함께하였던 여정을 담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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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방산과 용머리 해안으로 우씨 밀물이라 용머리 해안에서 쇠주한잔은 물거품과 함께

 

 

 

 

 

 

 

 

 

 

 

* 비양도를 바라보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이동합니다

 

 

 

 

 

 

 

 

* 다정한 모습을 뒤로하고 한림공원으로 갑시다

 

 

 

 

 

 

 

 

 

 

 

 

 

 

 

 

 

 

 

 

 

 

 

 

 

 

 

 

 

 

 

 

 

 

* 만남은 또다시 헤어짐인가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웠습니다. 그리구 행복했습니다. 함께하신 모든

  회원님들 그리구 함께하지 못한 형규 아빠 엄마 모두가 우리에겐 소중한 인연이고 만남입니다.

  헤어짐은 또다른 만남을 기약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집니다. 제주에서 칠성회 모임과 여정

  이제는 다시 육지에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정겨웠던 순간들을 마감합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날을 기약하며.......  이상 끝

 

 

 

 

 

시기님 내외분 특별 이벤트 사진 올립니다.

 

 

 

 

 

 

 

 

 

 

 

< 3일째 되는날 (3월3일 맑음)>

* 여장을 풀었던 함덕 동양선라이즈콘도에서의 일정을 접고 *

 

 

 

 

 

* 서귀포 잠수함 해저탐험 이야기 *

 

  관광은 아무나 하나 우리 칠성회 하늘사랑님 특별히 서귀포 해양경찰서 지구대장님에게

 

협조하여 서귀포 잠수함 해저탐험 입장료을 할인 받아 6가족 모두 수심40미터아래로

 

잠수함을 타고 탐험하였으니 그 자료을 여기 올려봅니다.

 

 

 

 

 

 < 잠수함에 승선하기 위해 문섬근처 잠수함이 있는 바지선으로 이동중>

 

 

 

 

 

 

 

 

 

 

 

 

 

 

 

 

 

 

 

 

 

 

 

 

 

 

 

 

 

 

 

 

 

 

 

 

* 천지연폭포에서 결혼기념일 어제보낸 최박사와 그 일당들이 흔적을 남기며 *

 

 

 

 

 

 

 

 

 

 

* 아프리카 박물관을 찾아서 꺽다리 세네갈 청년과 함께 *

 

 

 

 

 

 

 

 

 

*빼어난 해안경관과 절벽이 어우러진 주상절리에서 관광하고 있어요 *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상살이 50세가 넘어서면 누구나 지연, 혈연이다. 학연이다. 향우다 하여

여러 모임이나 회합을 하며 우리라는 울타리를 돈독하게 하려한다.

여기 곤드레(돌감자)도 마찬가지 초등학교 동창회, 고향초교연합동창회, 중학교동창모임,

고교 반창회, 그리구 동창회, 가계사촌형제자매모임, 처가형제자매모임, 직장동료모임,

지역사회단체모임등 수십개의 회합의 일원으로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며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군문에서 함께훈련하고  땀과 눈물을 함께 흘리며 생활했던 군동기 모임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모임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지난 삼일절 우리 칠성회모임은 이렇게하여 제주에서 모임을 하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자녀들

교육과 업무에 뒤를 돌아볼 겨를 없이 하루 하루에 충실하며 사업장에서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모두들 시간을 내어 우리의 아름다운 우정을 확인하며 2박3일 함께한

흔적을 여기에 남겨 봅니다.

 

< 3월1일 모임 첫째날 >

 

  * 제주로 날아가다*

 

 

 

 

 

* 공항에서 하늘사랑님이 픽업하여 신비의 도로, 그리고 러브랜드에서 사랑확인>

 

 

 

 

 

 

 

 

 

 

 

 

 

* 만남은 즐거워 ~~  동양선라이즈 호텔 노래연습장에서 회포를 풀다 *

 

 

 

 

 

 

 

 

 

 

 

 

 

 

 

 

 

 

 

 

 

 

 

 

 

 

 

 

 

 

 

 

 

 

 

가을의 전령 코스모스가 만개한 강원도 횡성의

한 산골 마을에선 어제부터 찐빵축제가

한창인다.

과거 5일장날에 어머니를 따라 장구경 갔을때

배가 꼬로록 거리며 시장기가 있을때쯤

어머니가 장터 한구석편 찐빵집에서

사주던 찐빵의 맛 아마도 그 어렵던 시절

맛보던 찐빵이기에 지금도

횡성 안흥찐빵하면 축제의 무도회가

열릴정도로 지역축제로 자리잡고 또한

문전 성시를 이루는 듯 하다.

퇴근길에 42번 국도를 지나치면서 잠시

안흥 찐빵 축제를 엿보고 돌아왔다

 

 

 

 

 

 

 

 

 

 

영동고속도로를 내달리다 횡성군 우천면 새말 인터체인지를 나와 42번국도를 따라
안흥찐빵으로 유명한 안흥, 평창군 방림, 평창읍을 지나 계속 내달리면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에 도달하고 그곳에서 42번 국도로 계속하여 임계, 동해 방면으로 가다보면 북평면
나전을 지나 정선군 북면 여량리 정선 아리랑의 아우라지에 이르게 된다.

정선(旌善)아리랑은 ‘아라리’라는 이름으로 정선을 중심으로 강원도와 경북 북부지역, 충북지역, 경기도 동부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구비전승 되어온 민요다. 정선아리랑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인 조선시대 초기(朝鮮 初期)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가 망한 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다짐하던 선비들이 송도(松都)에서 은신 하다가 그 중 7명이 정선(지금의 남면 거칠현동 居七賢洞)으로 은거지를 옮기게 되었다. 이들은 지난날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忠節)을 맹세하여 일생 동안 산나물을 뜯어먹으며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입지 시절의 회상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심정(心情)을 한시(漢詩)로 지어 율창(律唱)으로 부르곤 했다. 이들이 지어 비통(悲痛)한 심정을 담아 부르던 시는 마을 사람들이 부르던 소리 가락에 실려 애절함을 더해갔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하던 조선 후기부터 아리랑이 전국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자 명맥을 이어온 정선의 소리에 “아리랑 아리랑...”이라는 음율을 붙여 부르면서 ‘후렴구’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정선아라리’ 또는 ‘정선아리랑’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사람들은 나라를 빼앗긴 민족(民族)의 서러움과 울분을 애절한 가락에 담아 불렀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이 분단되자 반공(反共)의 분위기를 드러냈고,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아 부르기도 했다.

정선아리랑에는 시대 정신이 그대로 배어있다. 그러면서 남녀간의 사랑과 그리움, 남편에 대한 원망, 시집살이의 서러움, 고부간의 갈등, 산골마을의 지난한 삶, 떼타는 일의 고단함과 유희 등 삶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렇게 구전되어온 정선아리랑은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강원도의 대표적인 무형문화유산이 되었고, 체계적인 전승과 보전으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수많은 아리랑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아리랑으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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