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으로 들어선다는 입하가 오늘이고 또한 어린이날이

오늘이군요.  이제 아이들도 대학생이구 어린이날 하루가

따분 하기만 하네요.
녀석들이 이제 엄마 아빠 거들떠 보지도 않으니 하기사 

캠퍼스 생활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따분한 마음에 가족과 함께 언젠가 한번을 가보고 싶었던

강원도 영월군수주면에 위치한 천년고찰 법흥사를

찾아 보았습니다.


중앙고속도로 신림 나들목을 나와 영월 주천방면으로

가다가 주천에서 이름모를 지방도들 따라 평창방면으로

이동하니 법흥사 가는 이정표가 보이더군요.

평창강인지 하천을 따라 가다 사자산골짜기를 따라

내달리니 이내 법흥사로 이르는 일주문이 보이고

계속 1.5킬로미터 가량가니 바로 법흥사에 이르더군요


법흥사는 신라 선덕여왕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창건한 사찰로 창건당시

이름은 "흥녕사"라 하였으나 1902년 법흥사로
개칭되었다 하는군요. 글구 법흥사는 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하나로 그야말로 주변의 지세와 경관에 감탄을 금할길

없더라구여. 다행이도 몇 카트를 준비하였으나 사전에

관련 문헌한번 찾아보지 않고 답사한 우매함이 후회스러운

하루 이기도 하였습니다







 
강원도에도 봄이 찾아 오는가 봅니다.

노오란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하아얀 목련이 고고한 모습으로 수줍은 듯

가슴을 드러내듯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핑크 빛 벛꽃도 꽃망울을 지우고 이제나

터뜨리려나 기다리는 듯 한 따스한 봄날에

제가 가입하던날 주인장께서 말씀하시던 원주시 호저면 용곡리에

위치한 용운사지 문화유적을 찾아 보았습니다

 

 

                         <원주시 호저면 용곡리 용운사지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원주시 호저면 용곡리 용운사지 삼층석탑>

 

누구나  자신의 체취가 있는 곳은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가 아닌가 생각되어 진다.

 

모처럼 주말을 맞아 어디로 갈까 망설이던 차에

남자라면 옛 군대생활의 추억을 아니 떠올릴 수 있을

테인가? 해서 가보고 싶은 곳 동해안 울진을 답사해

보기로 하였다.

 

지금으로 부터 27년전 나는 경북 울진군 평해면 거일리

라는 곳에서 첨으로 군대생활을 시작하였다.

내 고향이 내륙이어서 바닷가에서 군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나에게는 설렘 그 대상이 아니 었던가?

 

당시 우리부대는 평해 거일라는 곳에 위치해 있었고

우리소대는 후리포(후포) 등대로부터  개바위라는 곳

경계를 하고 있었으니 이른 아침에 근무를 하면서

멀리 수평선에서 떠오른는 해를 바라볼때엔 밤새워

근무하던 하루의 피로가 그대로 풀려 버릴 듯한 푸근함

그 자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하여 봄내음의 향기와 내가 생활하던 곳의 체취를

느낄 수 있을까 하여  이른 아침부터 가족을 보채이면서

여정을 준비하고 행동하여 그 곳에 가보기로 하였다.

 

군 시절을 회상하면서 왕피천 어느 이름모를 절벽아래의 성류굴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어머님이 면회 오셔서 모처럼 외출로

성류굴내에서 어머님과 한 컷찍은 색바랜 사진한장,

여름철이면 망양해수욕장의 군용텐트안으로 업무보러 가던 추억과

망양정에서 바라보던 한폭의 그림같은 바다. 그리고 달이 오르는 월출,

평해 월송정앞에 펼쳐진 모래사장(당시는 통제구역이었음)

후포읍 바닷가  암벽언덕위에 하얗고 우람한 후리포등대의 불빛 .........

 

먼저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강릉으로 내달음 질 쳐보자

강릉하면 그곳도 꼭 가보고 싶은 문화유적지가 있는데

굴산사지와 신복사지가 바로 그 곳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목적지가 아니니 다음의 기회에 답사하기로 하고  강릉시내를

통과하여 7번 국도를 따라 정동진으로 향한다.

 

정동진으로 가는 길에는   안인진리라는 곳이 있는데

이 곳은 96년도 강릉무장간첩들이 잠수함을 타고 침투하면서

암초에 부딪쳐 좌초되면서 그 일당들이 단경골 , 칠성산 을 경유

내륙으로 도주하면서 강원도 전체를 떠들썩하게 하였던  과거

침투지역에 통일공원을 조성하여 당시의 잠수함과 우리 해군은

전함을 전시해 놓은 곳이 있으니 여기또한 아니 들려 볼 수 있겠는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성인관람료 2천원과 주차료 천원 등

5천원을 지불하고 우람하게 우뚝솟은 전북함(해군 구축함)과

무장공비침투 잠수함을 관람하니 어느듯 점심때가 되었다고

이 내뱃속이 꼬르륵 거리면서 음식물을 삼켜달라고 보채인다. ㅎㅎ

 

 



<통일공원내 위용을 뽐내고 있는 전북함(해군 구축함)>



<96 강릉무장공비 침투시 사용된 잠수정>

 

통일공원을 나와 5~ 7분여 남으로 해안선을 따라가니 이내 정동진

역이 보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가족과 함께 허기진 배를 채우고

정동진역 내부로 들어가 모래시계에 한 장면을 생각하면서

역 구내로 들어가니 입장권 오백원을  지불해야 역내로 들어갈 수

있구나. 

 

따스한 토요일 봄날 오후 멀리서 불어오는 북동풍의 시원한

바람줄기는 해변에 흰파도로 밀려오면서  시원하게 펼쳐진 백사장과

제법 어울리고 이 때일세라 주변 관광객에 염치불구하고 카메라 한 컷

부탁하여 가족과 함께 정동진역에 왔다 갔다는 영역 표시를 하여

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가족은 삼각대를 가져오지 않은 나의

건망증을 나무란다.

 



<모래시계의 정동진역 (멀리 동해의 푸른바다가 장관입니다)>

 



<정동진역에서 바라본 동해안 일대(흰파도가 인상적이었음)>

 

 

 정동진역을 나와  동해를 거쳐 삼척 그리고 임원을지나 

최초의 목적지인 울진으로 이동해 보자.

 

동해안 7번 국도는 십여년전에  다녀 본적이 있지만  그 이후

처음인 지라 10여년 만에 도로는 완전히 고속화 도로가 되어 버렸고

삼척 임원을 지나면서 강원도와 경북 경계선 검문소에서  차량이

지역남버가 아니라서 , 아님  내모습이 범죄자 비슷해서인지 모르지만

불심 검문에 응하고 이내 울진으로 달려갑니다.

 

울진 고포를 지나 울진 원자력 발전소 정문에서 우회선 하여 서쪽으로

가면 덕구온천이라는 온천 관광지가 나오나 이곳도 최초 목적지는 아니니

그냥 울진으로 내려가자,

 

지금으로 부터 십사오년전인가 울진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저녁에 원자로를

식히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을  낚시터로 개방하여 나도 두어번인가

낚시 채비를 하여 야간 돔 낚시를 하러 갔던 일이 생각난다. 

그 당시 수로에는 물반 돔반이었으니,  벵어돔, 흑돔, 참돔 할것 없이

상당수를 낚었던 기억이 새삼 새롭다.

 

그리고 또한 함 가볼 만한 곳 죽변항도 과거에 몇번 들렸으니

이번 여행에서는 시간관계상 생략하고 그냥  새로이 닦아놓은

자동차 전용도로를 따라 바로 울진읍내로 진입 해 보았다.

울진도 웰빙개발의 붐을 타고 과거의 울진이 아니라 

제법 시내 이곳 저곳에 고층 아파트가 여기저기 띠어 옛모습을

찾아 보긴 힘들었다. 하지만 옛 도로를 따라 시내를 두루 돌아보며

옛 향수에 젖어본다.

 

이내 울진시내를 통과하여 왕피천 근남대교를 건너 좌회전하여

망양해수욕장 우축 야산 언덕에 자리 잡은 망양정을 찾아

27~8년전 확트인 동해를 바라보고 일출과 월출을 구경하였듯이

시원하게 내다보이는 바다를 향해 한 컷 담아보자.

 



<송강이 노래한 관동별곡에 나오는 울진 망양정>



<망양정 누각에서 바라본 동해안( 왕피천방향으로 멀리 울진읍임다)>

 

망양 해수욕장에서 매화를 지나 울진 오산면으로 이르는 해안도로는

과거에는 없었으나 지금은 해안선을 따라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닦아 놓은 듯 하다. 과거의 해안을 경계하던 부대는 아여 보이지

않은채 이따끔  돌출된 해안선 암벽에는 군 초소가 눈에 띈다.

 

여기에서 오산으로 나와 7번국도로 진입하여  십여리 남으로 내려가니

4차선 국도는 다시 2차선 국도로 좁아지고 옛 도로 그대로이다.

망양을 지나 기성면 사동리를 지나니 우연찮게  우축으로 군부대가

보인다.  그곳은 유격훈련장이 위치했던 곳이 아닌가?

새삼 독사같던 교관과 붉은 모자를 쓰고 피티체조를 시키며

좌우로 데굴데굴 굴러가면서 악을 쓰고 구호를 외치며

유격훈련받던 군대 생활이 떠오른다.

 

사동을 지나 고개를 넘으니  울진군 기성면이 나오고 멀리

동해안과 맞닿은 정명천이 친숙하게 여겨진다.  기성면 봉산리

일대도 옛 군대시절 내가  경계하던 곳이 아닌가? 차량을 좌회전하여

봉산리 일대로 넘어서니 과거 우마차 고갯길은 2차선 아스콘으로

잘 포장되고 그 고갯마루에는 말그대로 상전 벽해가 되어 있었으니

울진공항이 그 곳에  건설되어 있으니 실로 까무라질 뻔 하였다.

 

봉산리 우리가 근무하던 소초( 소대가 해안 경계근무를 위해 파견되어

설치 되었던 군 막사)는 이미 철거 되어 없었고 그자리에는 광어 양식장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차량을 잠시 세우고 촌노에게 물어보니 군

막사는 벌써 오래전에 철수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옛날 경계서던 초소는

아직도 주인을 잃은채 그자리 있었으니 그리 반가울수가 .....

 

수없이 근무를 위해 걸어야 했던 옛 해안선 길은 시멘트로 포장되고

이를 따라 구산리로 돌아 나오니 평해 월송정 푸른 솔밭이 한눈에

들어 온다.

 

옛날 월송정 넘어 모래 해변에는 아카시아 목책으로 울타리를 치고

폐그물과, 모래언덕을 만들고 그위에 돌탑을 세워 경계용 장애물로

사용하던 통제 지역이었으나 지금은 해수욕장을 활용하는 것 같이 보인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월송정>



<월송정에서 바라본 동해안(솔밭사이로 드넓은 백사장이 일품임다)>

 

멀리 울진 온정면일대 에서 흘러내린 물이 남대천이 되어 평해를 경유

동해안으로 흘러드는 평해읍 직산리 일대 용머리 바위 일대에는

과거에 숭어 잡는 어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수없이 행군하며

훈련하던 농로를 따라 평해읍 거일리로 이동하니 벌써 해는 뉘였해지고

저녁이 엄습해 오고 있었다. 

 

거일리도 해안을 따라 잘 포장된 도로가 후포읍까지 이어지고

후포등대로 이어지는 옛길은 암반을 절개하여 닦은 도로가

비좁은 것이 예와 다를 바 없었으나  이 어찌된 일인지 흰색으로

우람하게 후포언덕위에 서있던 후포등대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철거 하였는지 여부는 알수 없었음)

 

시계는 저녁 7시를 알리고  서둘러서 1박 할 숙소를 찾아가야겠다. 

오랜만에 후포항에 다다랐으니 여기서 활어회와 그 유명한

울진대게를 구매하여  소주한잔으로 숙소에서 여독이나 풀어 보자구나.

 

최초 동해안을 돌아 볼때 숙박은 거일리 일대에서 민박을 할 예정

이었으나  그 비용이 일반 콘도 비용이나 비슷한지라, 계획을 변경

울진 온정면  백암온천지에서 숙박하기로 하였다.

 

서둘러 후포항을 나와 다시 평해를 경유 온정면을 향하여

숙소에 도달하니 캄캄한 저녁입니다. 자 그러면 여장을 예서 풀고

내일은  백암에서 구주령을 넘어 일월 영양 그리고 31번 국도를

따라 다시 북으로 봉화 현동 , 강원 태백으로 돌아보자

 



<구주령 정상(울진 온정과 영양 일월을 연결하는 88번도로)>



<강원도 태백시에 위치한 황지연못(여기가 낙동강의 발원지라 하는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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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골 선림원지에서 다시 56번 국도를 돌아 양양으로 향해본다.

여기까지 와서  가야할 길이 바쁘다고, 돌아가는 일은 아여 생각하지 말고 ...

 

56번도로를 따라 북으로 내달리니  한계령길과 교차하는 고가도로가 나오고

여기에서 양양읍 방향으로 5킬로 가량 이동하니 양양읍으로 빠져 나오는

나들목에서 오랜만에  오는 길이라 많이도 변한 지형에  낯설기만 하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현리에서 있을적에 필레약수터를

지나 한계령을 따라 내려오며 , 오색리, 양양, 속초 , 고성 , 거진 등은

눈감고 운행할 정도로 자주 다닌 도로 였건만,  오색리에서 양양에 이른는

외곽 도로가 4차선으로 말끔히 단장되었으니 길이 헷갈릴 수 밖에.....

 

그래도 주저함 없이 양양으로 빠져나와 속초 공항방향으로 빠지는 지방도로를

따라 이동하니 이윽고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가 나오고, 거침없이 한달음에

진전사지를 향한다.

 

지형과 도로, 방향 감각은  처음 가본는 곳이라 할지라도  관광안내 책자에

나오는 도상으로  지형을 보고 실제로 가 보았던  경험이 지금에도 어느 곳이라는지 

관광안내 지도없이 찾아 다닐 수 있는 노하우가 아닌가 생각 된다.

물론 떠나기 전에 도상연구는 하지만 말이다.

 

아뭏튼 속초비행장 방향으로 이동하다 둔전리 진전사지 방향으로 용케도

좌 회전하여 시멘트 포장길 , 아스콘 포장길로 설악산 동쪽 계곡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시멘트포장이 끝나는 우측길 옆에 진전사지 3층석탑이 천년의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도의선사 부도탑은 어디에 있는가? 차량을 진전사 3층석탑앞에 주차시키고

홀로 걸어 찾아가는 길은 제법 거리가 되었다. 멀리 저수지 제방이 보이고

비포장 도로를 따라 저수지 제방 가까이 다다르니 우측 돌계단으로 도의선사

부도탑 안내 간판이 보인다. 간판은 70미터로 되어 있는데 실거리는 100미터이상은

됨직 하였다. 거기에다 나즈막한 산자락을 오르는 길이니 나 같은 우량아에게는

운동이 될 듯 싶었다.

 

이윽고 도의선사 부도탑에 도착하여 합장하고 몇카트 눌러본다. 그런데 바로

옆에는 천년의 고찰 진전사가 다시  복원된 듯이 새롭게 단장하여 있지 않은가?

시간에 상당히 지나 날이 뉘였해져도 주차된 곳으로 오지 않으니 가족이

빨리 집에 가자고 보챔을 한다. 서울에서 대학다니는 큰 여식이 머 오늘

집에 온다나, 그럼 낙산사에서 가족과 오붓한 저녁이고 머고 다 틀린 일인가

보다. 모처럼 가족과 동해안에서 1박하며 고찰이나 폐사지, 문화재를 돌아보는

것으로 계획 했던 것이  이것도 다음 기회로 미루고  집으로 내달음 쳐야 하는가 보다.

 

진전사지의 답사는 머 확인해 볼 겨를도 없이 그렇게 보는가 봅니다



<진전사지 3층석탑>



<진전사지 3층석탑 2층기단 팔부중상>



<진전사지 3층석탑 옥개석 부분>



<진전사지  부도>





<도의선사 >



<진전사>

진전사가 새로이 복원되었네요 .  비록 제위치는 아니지만 부도탑 바로 옆쪽에 있구여,

명칭만 진전사 인지 아님 , 복원된 진전사인지 확인은 못했어요

누구나 다 그러한지는 모르겠으나,  중학교 , 고등학교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담임 선생님이든, 아님 학과 담당선생님이든 존경하는 그리고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한 두분씩은 있는 듯 하다.

 

물론 나 역시 중학교 시절엔 국어 선생님을 존경하였고, 또한 국사 선생님을

존경 하였었던 것 같다. ^^*  당시 국사 선생님은 수도여자대학(현 서울 세종대)를

졸업하시고 아주 젊은 나이에 우리 중학교에 국사 선생님으로 첫 부임 하시었었다.

 

선생님께서는 복장에서도 항상 유행의 첨단에서 우리 학생들의 최대관심의 대상

이셨고, 또한  상고시대로 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 까지도 국사교육에 그야말로

열정을 가지고 우리들을 가르치신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도 그 카랑카랑하던 음성으로

복창시키던 음성이 들려 오는듯 하다  자  모두들  욕살, 도사 , 처려근지...............

 

그래서 인지 그때부터 나는 우리의 문화재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지도 모를일이다.

항상 마음속에 우리 조상의 숨결이 닿았던 곳이라면 빠짐없이 쏘아다니며, 그 숨소를

듣고 싶었는가 보다, 하지만  28년여간의 내가 택한 직업의 길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일시 멈추게한 시간이 아니었는지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이제 자연인으로서 이제는

내가 하고픈 일들을 언제든지 할 수 있고, 또한 내가 가고픈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가

확인하고, 답사 할수 있으니  이 또한 중년의 즐거움이 아니 겠는가? 

다만 지금도 시간의 제약을 받지만 주말, 주일만이라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자 그럼 나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으로 접어두고 홍천군  내면 창촌리에서 주린 배를

채웠으니  구룡령을 넘어  양양으로 넘어가 보자. 우리가족은 시간이 늦었으니 이쯤에서

돌아 가자고 하지만  가다가  돌아서면 아니감만 못하니 계속해서 앞으로 56번 국도를

따라 양양으로 내달음 쳐 보자.

 

구룡령을 구비 돌아 달리니  응달진 길가 여기 저기에는  약간의  하얀 눈이 얼어 붙어

방활 모래를 살포해 놓아 겨울임이 확연히 느끼며, 조심스레 서행으로  넘어 갑니다.

구룡령 정상에서 양양방향 아래쪽으로 내려오니 우측으로 국립 미천골 자연 휴양림

입구가 보이고, 여기에서 우회전하여 계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1킬로미터 가량

올라가니 자연휴양림 매포소가 나오고, 이내 여기에 잠시 주차하여  선림원지 답사하러

간다고 하니 입장료는 별도로 받지 않고 주차비만 지불하고 7 - 800미터 계곡위로

돌라가니 좌측축대가 보이는 것이 절터임을 바로 직감하고 차량상호 교차를 위한 공간에

주차하고 선림원지를 답사 해 봅니다.

 



<선림원지 안내 간판>



<선림원지 3층석탑>



< 선림원지 3층석탑 2층기단 팔부중상>



< 3층석탑 옥개석 부분>



<선림원지 불당터>



<선림원지 부도>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귀부 및 이수>



<선림원지 축대석>

 

선림원지 석등은 이미지 올리기에 문제가 발생해 못 올리네요 ^^* 변환을 잘못 시켰남ㅎㅎ

안내 설명 간판 사진은 필요 하시다면 올려 드릴께요

 

그럼 선림원지는 이쯤에서 접어두고 어느듯 강원도 산골짝의 해는 서산에 걸려 지고 시계는

오후 3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쁜 답사시간으로 양양까지 왔으니 진전사지는 찾아 답사하고

가야 겠지요.

 

그럼 진전사지에서 다시 만나요 ^^

지난주만 하더라도 영하의 날씨가 오늘은 겨울답지 않게

포근하게 느껴지는  토요일 주말입니다.

 

이번 주말 답사여행은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한우의 고장 횡성을

찾아 보았습니다.

 

강원도 횡성하면 이번 APEC 정상회담시 제공된

횡성한우로 유명하구여,  태기산 더덕, 그리구

안흥찐빵하면 거의 다 아실거예요

 

횡성군청 홈피를 찾아 횡성의 문화재를 확인하니 읍하리 석불좌상,

3층석탑이 현 횡성군청뒤 3. 1공원에 위치한다는 것과

횡성 갑천면 중금리사지 3층석탑 , 풍수원성당 등 이 눈에 띄던 군요.

 

또한 무형문화재 하면 민속놀이 경연에서 과거 대통령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 횡성 회다지 소리가 있는 듯 합니다.

 

우선 주어진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답사 할 계획을 세우고

읍하리 석불좌상부터 찾아 보았습니다



<횡성 읍하리 석불 좌상>



 

      <횡성 읍하리 3층석탑>

 

 

횡성 읍하리 석불좌상과 3층석탑은 단청으로 치장된 보호각 아래 함께 위치해

있었고,  이들 문화재들도 어쩌면 일제시대 반출대상에 올려져 군청지역으로

옮겨와 제자리를 잃지는 않았는지 생각 되어지던 군요

 

3.1 공원내 이들 문화재를 답사하고 중금사지 석탑을 답사하기 위해 19번 도로를 따라

갑천방향으로  곧장 내달음 치니  이내 횡성댐 담수호가 보이고 중금리 3층석탑이

위치한 망향의 동산에 정차 하니  비록 헤어지기는 했으나 고고한 자태로 망향의

동산 한편에 중금리사지 3층석탑이 쌍탑으로 자리잡고 있더군요.

 

이들 횡성 갑천면 중금리 사지 3층석탑드로  횡성댐 수몰로 인해 제자리를 잃은 채

망향의 동산에 복원되어 과거 이름모를  사찰의 융성했던 시대를 보여 주는 듯

하였습니다.



 <횡성 갑천면 중금리사지 3층석탑(동편탑)>



<횡성 중금리 사지 3층석탑 (서편탑)>



< 3층석탑 복원 깨어진 석탑 부재들>



<이중 기단의 팔부중상>

탑의 형태가 양양의 진전사지3층석탑, 선림원지 3층석탑과 비슷한 부분이 많이

있는거 같아요 >



< 횡성 갑천면 중금리사지 3층석탑의 옥개석 부분>

 



< 횡성댐 망향의 동산에 복원된 중금리사지 3층석탑>

3층석탑 너머 멀리 보이는 산아래가 바로 횡성댐 담수호 입니다.

 



그럼 여기서 가 볼수 없는 풍수원 성당과 공근리에 위치한 문화재는 또다른 방향으로

가야하니 다음 기회로 미루어 두고 계속 19번 도로를 달려 갑천면 소재지를 지나

청일면을 거처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을 향하겠습니다. 이유는 돌부리 회원님이

답사하신 양양 미천골 선림원지를 답사하기 위해서 입니다.

 

홍천 서석에서 수타사, 그리고 홍천 내촌면 물걸리 사지는 그리 멀지 않지만 여기도

다음 기회로 미루고 56번 국도를 따라 홍천군 내면 창촌리를 향해 갑니다.

 

영동고속도로가 4차선으로 개통되기 이전만 하더라도 양양에서 구룡령을 넘어

홍천 내면 창촌리를 지나 서석 횡성 갑천 정금 새말로 이어지는 국도 와 지방도는

휴일이면 차량으로 넘쳐 났었는데 영동고속도로 개통이후 동해안은 있는 56번 국도는

그야말로 수킬로 미터를 가야 차량한대 지나가는 한산한 산골 내륙도로가 되어

버렸더군요 .  물론  이 도로변이 호황을 맞아 여기 저기 우후죽순올라 오듯 건축된

휴게소들은 지금은 거의 모든 곳이 폐쇄 되다 시피 하여 안타 깝기 그지 없었구여

 

자 그럼 홍천군 내면에서 잠시 주린배를 채우고 구룡령 넘어 이야기는 내일로 돌리겠습니다

구전되어 오던 우리지역(원주)문화재를 검색하다 우연히 이순우씨가 저술한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관한 조사 보고서"라는 책을 접하고서 몇자 적어 봅니다

원주지역의 문화재가 대량 반출된 시점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치하 1915년 봄으로
추정된다. 이는 1915년 9월 15일 부터 10월31일까지 50일간 경복궁에서 열린
"시정오년 조선물산 공진회"가 열리면서 라고 합니다. 

이때 야외전시유물로 수집의 표적이 된 지역이 바로 원주지역인데, 이는 그당시 "세키노
타다시"라는 일본인 일행의 "고적조사보고"에 의해 원주지역의 문화재가 세상에 드러난
탓이라고도 말합니다. 세키노는 조선총독부의 촉탁으로 1912년도 고적조사일정에 따라
원주지역을 그해 11월에 탐방하였고, 1914년 공진회장 건립이 구체화 될때 , 원주지역
문화재들은 야외전시유물 수집의 표적이 된 듯 합니다..

더구나 육로 수송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그당시 원주지역은 남한강의 지류인 섬강이 위치해
수운의 발달로 마포에서 황포 돗배가 일제 말기까지 원주시 문막읍(현재 문막1리 물굽이
마을)지역까지 드나 들었으니 수운을 이용한 운송수단의 용이성은 원주지역 문화재가
반출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으리라 추정되기도 하구요.

이 순우씨가 저술한 "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관한 보고서"에 의하면

이때 반출된 문화재들을 나열해 볼 때 1911년경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경복궁 공진회 야외전시유물의 으뜸자리를 차지했던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법천사지에
위치해 있던 지광국사 현묘탑<국보 제101호>이 최초로 반출된 듯 하고, 이후 지정면
안창리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보물 제365호>, 부론면 정산리 거돈사지 원공국사승묘탑
<보물 제190호>, 원주시 가마지 절터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원주 철불 5구, 영전사지
석불 2구를 비롯하여 원주시 태장동 영전사지 보제존사리탑<보물제358호>2기 등 석탑 4기
(2기는 현 천수사 3층, 5층석탑으로 추정됨)를 공진회장으로 반출해 갔으니 가히 싹쓸이
하다시피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구전으로 전해지는 전 흥법사지염거화상탑<국보 제 104호>도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일제시대 원주지역에서 반출된 것이라 추정되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 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위에서 열거한 이들 문화재는 그들의 고향을 떠나 경복궁뜨락이나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자연 부락 명칭인 탑전(탑이있던 밭)마을에 탑이 없어지고,
페사지 부도골에 부도가 없음은 일제시대때 모두 반출해 감으로써 그러하지는 않을까?

문화유적답사회에 처음 가입하고 디카 첨으로 구입해서

아주작게 담은 최초 나의 작품사진 2005년 1월 22일의

서곡리 석탑재 모습입니다.  용수골입구 마을 휴양지로

매표소 입구에 의자로 사용하던 석탑재 입니다 ㅋ~~~

< 원주시 판부면 서곡리 용수골 입구 석탑재 >

 

 

 

 

 

<거꾸로 놓여져 옥개석이 보이네요>

 

 

언제 어떤 사찰에 석탑인지 모르지만 노송아래 뉘어진 모습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실런지요, 어찌보면 쉼터의 의자로 생각하고 계시는 건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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