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온후 화창한 날씨입니다. 해발고도가 높아서 인지

따가운 햇살속에서 부는 바람이 제법 선선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한 낮의 우연한 기회에 평창군 진부면 탑동리

탑골에 위치한 탑동리 3층석탑을 찾아 보았습니다.

 

팬션같이 아름다운 탑동리 마을회관 바로 옆에 위치한

탑동리 3층석탑은 화려하지도 않고 세련되어 보이지도

않은 평범한 석탑이지만 신라시대 세워진 절터에

고려 중기에 세워진 고고하게 보이는 석탑으로 매우

수수한  것 같아 보였습니다.

 

탑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사진자료에 담았놓았어요

 

                     <강원 평창 진부 탑동리 3층석탑>

2층기단위에 3층석탑이구여, 특이한 접은 1층 몸돌 네귀퉁에 꽃장식 같이 돌출된 부분이 특이 했어요.

 

 

 

                              <석탑의 몸돌과 지붕돌  모양>

옥개석은 3단으로 되어 있어구요, 몸돌은 하나의 몸돌로 구성되어있구 우주와 탱주를 조각한

흔적이 보이는 듯 했으나 세월에 마모되어 육안으로 식별은 어려 웠어요

강원도 원주!  하면 역사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 9주 5소경의

하나인 북원경이 원주이고, 라말 지방호족세력들이 군웅활거할때

북원의 양길세력하에서 궁예가 북원의 동남쪽에 위치한 석남사(지금의

원주시 신림면 석남리)에서 머무르면서 양길의 군사를 빌어 명주(지금의

강릉)를 함락시키면서 기틀을 다졌던 곳 이기도 하다

 

또한 원주하면 프로농구의 명문구단인 동부프로미(전 TG삼보)가 연고로

하고 있는 강원도 유일무이의 프로스포츠 연고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원주에 치악 8경의 중 하나로 손꼽히는 영원산성이 있으니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치악산 국립공원 매표소를 거쳐 비포장 오솔길로

들어서면 시야에 들어온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영원사 뒷산의 석성으로 신라 문무왕때 축성

되었다 한다. 후삼국시대부터 임진왜란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방패역할을

했다.  영원산성을 찾아가는 구불구불한 길에 수놓인 영원사 연등 행렬이

등산객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금대리 계곡을 훑고 내려오는 섬섬옥수같은

물줄기는 도회지 사람들의 충혈된 마음의 눈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산허리가 굽이칠 때마다 연초록 향연을 펼치는 원시림 사이로 웅장한

폭포수 소리가 귓전을 스친다. 산기슭 손바닥만한 땅뙈기에 옥수수를

파종하는 노부부의 손길이 정겹게 시야에 잡힌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이 한구판 밀레의 만종 같은 분위기다. 도회지로 떠난 자식이나

손자가 '옥수수 하모니카'를 불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그리는 듯 괭이질이

가볍게 느껴진다.

 

치악산 자락을 따라 하얀 매화꽃 향기가 자욱하다. 흥겨운 계곡 물소리에

맞춰 토종다람쥐가 왈츠로 화답한다. 산자락 천년 고찰 영원사를 지나 깍아

지른 듯한 등산로 주변에는 진달래가 만발했다.

 

길이 2.4킬로미터의 영원산성은 1단계로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년동안

성곽 422미터가 복원작업이 완료했다. 치밀한 고증 작업을 거쳐 산선높이를

최고 5미터에서 최저 2미터로 복원해 놓았다.

 

고려시대 원충갑이 원주 백성들과 함께 저군을 크게 물리친 영원산성은

임진왜란때도 원주 목사 김제갑이 주민을 이끌고 왜군과 치열한 격전을

벌이다 전사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영원산성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중앙선 철길의 (구) 백척철교가 눈에 들어온다. 일제시대 주민의 피땀으로

뚫은 터널이 시야에서 멀어지면서 복잡하게 전개되는 독도 문제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씁쓸한 기분으로 30만 원주 시민의 문화 젖줄인 토지 문학공원을 찾았다.

1999년 개관한 박경리 선생의 토지 문학공원든 단관택지 개발지구가 지정되면서

원주지역 지인들의 요구로 헐릴위기를 모면했다. 3000여 평의 토지문학공원은

대하소설 "토지"속의 무대가 고스란히 등장한다.

 

전시실에는 26년 만에 완간한 대하소설 "토지"가 1부에서 5부까지로 나뉘어 소개

되고 줄거리와 연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소설은 일제시대를 주무대로 1945년 8월15일 주인공 "서희"에게 일본의 무조건 항복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집필도 광복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69년8월15일 집필을 시작한 " 박 경리" 선생은

94년 광복절에 탈고 했다.

 

전시실 전망대에서 서면 문학공원이 한눈에 들오온다. 박경리 선생 옛집을 중심으로

경남 하동 평사리 마당에서 섬진강 나루터, 홍이동산, 용두레벌 간도 용정까지 3000리가

무대로 한눈에 펼쳐진다.

 

16년동안 박경리 선생이 살면서 "토지"를 완성한 옛집은 토지 4, 5부를 탈고한 장소다.

현재에도 집필실과 살림살이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특히 손수 가꾼 텃밭과 정원을

재구성해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집앞 두 평 남짓한 연못도 직접 만들었다.

창문 앞에는 경남 통영에서 가져 왔다는 오죽이 그림처럼 우아한 자태를 뽑내고 있다.

마당의 느티나무와 텃밭도 박경리 선생의 숨결이 느껴진다.( 기행일부 퍼온글)

언젠가 내 블로그를 만들어 보겠다는 신념은 있었으나

컴퓨터에 문외한인 컴맹인 나에게는 자신이 없어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지난주 (2006년 5월12일)에 블로그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모은 글들은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회원으로

등록하여 여기저기 우리 문화유적을 답사하며, 나름대로의

답사기를 올린 글들을 내 블로그로 옮겨 놓았습니다.

 

앞으로도 여가를 활용해 내가 좋아하고, 가보고 싶은 곳

구석구석을 누비며 내 블로그를 꾸며 보렵니다.

 

그리구 여러 기행이든 답사기든 언제나 개방하여 내 불로그를

활용하는 방문객들에게 대문을 활짝열어 맞이 하겠습니다.

 

방문하시는 모든 님들 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그리고 항상 좋은일만 가득한 행복한 하루되십시오 ^^

 

강원도 정선에서 평창을 거쳐 영월로 흐르는 동강(남한강 상류) 입니다

멀리 삼각형으로 보이는 곳이 칠족령이라 하고 희미하게 보이는 절벽아래

백룡동굴( 천연기념물 260호)이 위치해 있어요.

주변의 백운산에서 내려다 보는 동강줄기는 정말 아름답기 그지 없지요

(담에 등산해 올려 들릴께요 사실은 두번 등산했는데 기록물이 없네요 ^^*)

주인을 기다리며 매어있는 쪽배가 정겹네요

전흥법사지 염거화상탑의 위치가 어디였을까?
일제시대때 원주일대에서 반출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반출된 그위치가 어디인지 아는 사학자들은
한분도 없는 듯 하다.

그리하여 흥법사지에서 반출되었을 것이라는
추측만하고 문헌에 흥법사지에서 옮겨졌을것이다
하여 "전"흥법사지 염거화상부도탑"이라 불리며
현재에도 새로이 단장된 국립박물관 야외의 한구석에
전시되어 있지 않은가? 제자리를 잃은채 .....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마을에는 흥법사지라는
고려초 폐사지가 위치해 있다.
그리고 그 곳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원주시 문막읍 동화리라는 곳에는
어느시기의 폐사지인지 모르나 동화사지가
있으며, 지역향토사 문헌을 찾아보면
동화사지 부도골이라는 곳에 부도탑이
있었다 하는데 일제시대때 반출되었다 하고
그 부도탑이 어떤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런지 꼭 그곳을
답사하여 확인하고 싶다. 어쩜 부도탑 위치와
이미 세상에 뭍혀버린 그 어떤 탑비를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말이다 ......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것 같아요
대관령을 넘는 바람이 제법 옷깃을 여미게
할 정도로 매섭게 불고 있어요.

오늘처럼 화창한 대관령의 날씨도
찾아보기 힘든데 오늘은 제법 화창해 멀리
능경봉이 다 보이는 군요

저멀리 대관령 아래로는 동해 바다와
강릉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시계는
시가지는 농무로 인하여 한폭에 담지 못함이
아쉽기만 하네요

참 그리고 대관령에는 요즈음 풍력발전기 건설이
한창인데 14기 완공되었고 앞으로도 35기를 더
건설 한다는 군요.

대관령 삼양축산 목초지를 비롯하여 매봉
선자령, 그리구 풍력발전기도 앞으로 관광자원으로
한몫 할 것 같네요.

그리고 머니해도 대관령 하면 눈, 그리고 스키장이
아닐까 생각되어지는군요. 발왕산북쪽 정상에서
내달리는 슬로프는 그야말로 동계스포츠의 메카가
대관령이 아닌가 싶군요.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과 평창군 미탄면 군 경계선을 따라
백운산이 위치했 있습니다.

백운산 하면 우리나라에 수개의 산들이 있지만 동강을 아래에
두고 솟아있는 백운산(882미터)은 100대 명산의 하나라고들
하네요

산행하시는 길은 정선군 신동읍에서 고송리 제장나루나
점재나루에서 등산하는 코스가 있구여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백룡동굴이 위치한 문희마을에서
올라 칠족령 정선 신동읍 제장나루로 내려가는 코스가 있어요

백운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동강의 굽이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폭의 수채화보다 아름답지여




 

신라 시기  징효대사가 개창한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흥녕사(지금의 영뤌 수주면 법흥리의 법흥사) 사자산을

아시는 분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러나 강원도 평창군과 영월군 , 횡성군을 경계로 하는

지역에 사자산이 위치해 있고 그 아래 법흥사가 위치있다.

 

지난 주일 모처럼 시간을 내어 사자산을 경유하는 백덕산

일대의 겨울 산행을 하였다.  낮에도 영하7-8도의 기온으로

겨울산행으로 제법 옷깃을 스치는 바람이 매서웠다.

 

백덕산에 오른는 길은 찐빵의 고장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소재지를 지나 42번국도를 타고 평창군 방림면 방향으로

이동하다 보면 문재터널을 지나는데 문재터널을 빠져나가자

마자 우측에 차량을 주차하고 오른편 응달진 소로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임도가 나오고 , 구 문재정상 통신탑을 오른편에 두고

왼편 능선을 따라 동동남 방향으로 50분가량 오르면 헬기장에 이르로

그 곳에서 다시 30여분 오르면 사자산이란 등산안내간판이 보이는데

오른편에 보이는 조그마한 고지가 바로 사자산이다.

 

그러나  사자산은 등산 메니아 들에겐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백덕산(해발 1350미터)는 겨울등산지로 알려져 있는 듯

하다. 오르는 등산로에 제법 눈이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등산객이 오른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아뭏튼 사자산을 경유하여 20분 정도 더 등산로를 따라 이동하면

당재라는 곳이 나오고 거기에서  법흥사로 내려가는 길과,

백덕산으로 오르는  이정표가 세워저 있는데 그 곳에서 1.2킬로

더 오르면 백덕산(1350m) 정상에 오르게 되는데 백덕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관은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동으로는 평창읍방향으로 확트인 계곡이 보이고, 또한 멀리

정선의 가리왕산(1561m)까지 보이고 서로는 치악산(1288m)등이

보이며 남으로 영월지역까지 보인다.

 

산행을 좋아 하는 회원님들 계시다면 법흥사답사도 하고

사자산, 백덕산 산행을 하시면 그거야 말로 일거 양득이 아닐런지요

 

 

 

<백덕산에서 바라본 평창>

 

 

<빨간모자가 곤드레>

지금으로부터 약 22년전인가? 나는

경주 남산자락에 자리잡은 화랑교육원에 입소 하였던

적이 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 문화유적에 그리 큰 관심이

없었는 지라 희미한 기억이지만 교육원에 입소한 1일차에

경주 남산일대의  문화유적을 답사하는 시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침 일찌기 식사를 마친 우리 입소자들은 교육원에서

내어주는 쌕(휴대용 가방)안에 음료와 도시락을 담아

짊어메고 남산을 오르던 일이 생각난다.

 

20여년이 흘러 어느코스로 답사 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기억을 더듬어 관광지도를 보면 부처골이 아닌가 싶다.

 

교육원에서 나온 인솔 선생님께서 최초로 인솔한 곳이

어느 산 기슭에 광배와 부처가 나란이 세워져 있던 곳 부터

답사하고  그 어는 계곡의 능선을 따라 올라가다

 

남산산성인가? 하는 곳에 잠시 멈춰 탄화미를 주어들고

우리에게 설명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능선을 따라

오르다 커다란 임도같은 길이 나오고 그길을 따라 오르니

정자같은 누각도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암반으로 이루어진 산악을 오르고 내리고 하면서

절벽의  공간에 유난히도 코가 마모된 이름모를 석불을 보면서 

인솔 선생님이 코가 마모된 내력을 설명하던 일이 아직도

내 기억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름모를 산속에 세워진 석탑을 답사 했고

어디로 내려 왔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 서출지인가 ?

하는 연못 누각에서 설명듣던 일과 , 통일전을 마지막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보로 남산일대를 답사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생각나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 남산이

아닌가 생각된다.

입하가 이번주이고 보면 벌써 봄이 지고

여름이 오는가 봅니다.

 

날씨도 예사롭지 않게 햇살이 따갑고 더위를

느낄만큼 금년도 봄도 성큼 성큼 지나가는 듯 합니다.

 

문득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에 들릴 기회가 있어

주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법천사지를 찾아 보았습니다

아직 발굴이 끝나지 않아 청색천으로 사지 전체을 뒤덮어

놓은 가운데 에서도 이름 모를 잡초들이 파랗게 새싹을 틔우고

올라오고 있었구여

 

옛 법천사의 영화롭던 시절을 말없이 키켜보는 우마차 도로

한가운데의 천년 느티나무는 나이를 잊은듯 새순을 움티우고

봄을 맞이하고 있군요

<법천사지 내 느티나무>



< 법천사지 지광국사 현묘탑비( 국보 제 59호)>

 


<탑비 안내간판도 내용을 바꿔야 겠군요 현묘탑이 경복궁에서 용산 국립박물관으로 이전 되었겠지요>

 



< 탑비 귀부부분>

 



< 탑비 이수 부분>

 



<귀부 뒷부분>

 



<귀부 등부분>

 

 



<이수 중앙부분( 용문이 선명하네요)>

 



<폐사지내 광배 (석불상은 어디로 가고 광배만 남아 있을까?)>

 



<이름모를 석재 부재들>

 



<법천사지 당간지주 ( 사지 남쪽에 위치)>

 



<당간지주 하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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