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리 바빳을까?
어느듯 9월의 문턱을 넘어 10월의 중순에 접어 들고 있다.
젊은 시절의 낭만을 알것 같았던
지난해 10월의 마지막 밤에 블랙커피 만큼이나 쓰디쓴 저녁밤의 詩를 노래하며
또 몇해전에는 천관산 은빛 추억을 아로 새기며 보내던 일이
아련히 떠오른다.
어찌하든 10월의 달력은 그리 지나가고 있다.
9월에는 그렇게 가고싶은 山河도 만끽하지 못하고
그대로 그렇게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한 9월이 아닌듯 싶다.
얼마전 9월 20일 나의 장모님 傘壽(산수)잔치를
여러 처가 형제들과 처 외가 친척/친지들과 함께 하였다.
언제고 우리 처가 형제들이 꼭 그렇게 모시고 싶었던
가족 행사이기에
80평생 어머님께서 고이 간직하던 앨범을 스캔하고 편집하여
어머님이 살아온 흔적을 내 스스로 동영상으로 꾸미어
잔칫날 모든 친척들과 함께 어머님의 과거를 회상하고
눈시울을 붉히며 처가 형제들과 소중한 한 때를 보내었다.
큰 처남댁이 나를 셋째아들이라고 불러줄 만큼
나의 장모님을 섬기는 이유가 내게는 있다.
장모님은 그 어렵던 시절 처가 6남매의 자녀들을 남기고 일찌기
작고하신 장인어른을 대신하여 처가 형제들을 훌륭히 키우시고
또한 소중한 나의 가족을 나에게 보내 주시었다.
이제는 장모님이 그 모진 세월의 아픔을 우리들에게
보상받고 여생을 편안하게 그리고 젊은시절 홀로 고생하신
보람을 찾아 드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나는 성심을 다해 장모님을 섬긴다.
또한 나의 젊은시절 직업군인으로서의 핸디캡은 전후방 각지로
일년이 멀다하고 수시로 이삿짐을 꾸려 이리저리로
이사 다니다 보니 섬기고 싶어도 나에게는 그러한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또한 자녀들도 훌훌히 성장하여 우리들 곁에서
멀어져 가는 기로에 서성이며 나를 뒤돌아 보고
지금까지 못다한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에 지난 9월 20일 장모님 산수잔치의 흔적을 남기어 본다.

< 어머님과 우리 형제들 입니다. ㅎ~~>

< 어머님과 처가 큰아버지 그리고 셋째, 넷째, 다섯째 작은아버지와 처 고모부님 내외입니다.>

< 어머님(장모님) 외가 큰외삼촌, 작은 외삼촌, 작은이모님 내외와 처 외사촌 형제들입니다.>

<어머님과 처남 그리고 사촌처남 및 큰동서입니다. 처남들이 다함께 하지 못했는데 이정도면 대가족
이지요 ㅎ~~~>

< 어머님과 고모님 처남댁들 그리고 처형들입니다. 일부함께 촬영하지 못한 분들이 있네요 ㅎ~~>

<어머님과 우리 형제들과 조카들입니다. 저희 두자녀와 막내처제 두자녀, 그리고 큰처형 작은아들이
회사업무 출장관계로 참석하지 못했네요 ㅎ~~~ 대가족이지요 ㅎ~~>